[함께하는 인천] 평화·통일 가치 찾는 제2의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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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인천시가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프랑스 노르망디상륙작전 기념식처럼 국제행사로 키우려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뒤엎은 노르망디처럼 6·25전쟁 초기 서울 탈환의 전기를 마련한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의 가치적인 차원보다 국제적 규모로 성대히 치르려는 안보관광 측면을 더 부각하고 있어 안타깝다.

인천은 세계사를 바꾼 전쟁을 참으로 많이 치른 역사의 현장이었다. 강화도는 1천여년 동안 개성과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이었기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지역이었다. 고려 때 개성 궁궐을 강화도로 옮겨 세계 최강 몽골군과 39년간 대적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는 강화도가 의병 사령부 역할을 했다. 병인양요 때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에서 500여명의 포수로 구성된 양헌수 장군의 정예부대가 프랑스군을 격파했다.

강화도와 물길로 연결되는 월미도, 영종도도 격전의 현장이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프랑스 함대와 미국 콜로라도호가 영종도 앞바다 머물다 강화도로 출항했다. 1885년 일본 운요호가 영종진에 상륙해 조선군 35명을 몰살했다. 또 전투 중 부상한 일본군이 고국에서 숨지자 그의 위패를 야스쿠니신사에 고이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 때 인천앞바다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었다.

강화도 광성보 전투에서 미군에게 빼앗긴 어재연 장군의 ‘수(帥)’자 깃발을 장기 임대 방식으로 갖고 왔고, 인천시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러시아 침몰 순양함 바랴크호 깃발을 러시아에 대여해준 바 있다. 북방한계선(NLL)을 끼고 있는 서해5도는 한반도의 화약고와 다름없다. 1999년 6·25전쟁 이후 서해상에서 벌어진 남북간 첫 교전인 1차 연평해전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백령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이어졌다.

인천 시내를 초토화시킨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을 왜 매년 열고 있는가. 자유공원에 세워진 한미수교기념 100주년 기념탑과 맥아더동상 철거를 둘러싼 시민 간 이념 논쟁이 납득되는가.

뼈아픈 전쟁의 역사적 사실을 가슴에 묻지 않고 되새기려는 건 불행을 반복하지 않고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 때문이다. 북한 장산곶과 가까운 백령도에서 2012년부터 예술인을 중심으로 진행된 인천문화재단의 ‘평화미술프로젝트’는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승화시키려는 문화기획이었다. 영종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시민 기금으로 ‘아, 영종진!’이란 창작 연극이 제작된 적이 있다.

인천에서 빚어진 전쟁의 역사를 세계 평화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역사문화콘텐츠를 더 발굴하고 중시하는 분위기부터 확산되길 바란다.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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