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관 이후 기획전·특별전 ‘문화 오아시스’ 역사문화실 들어서면 이천의 과거로 ‘시간여행’ 구석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 전시 청자·분청·백자 등 도자기 1천200여점 탄성 절로 화각공예 체험·잔디마당 ‘이천거북놀이’ 흥미진진
전통의 멋 도자기 : 은은한 색 수려한 선
(재)이천문화재단 이천시립박물관을 품고 있는 설봉산은 이천시민들에게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하고 넉넉한 산이다. 2002년 개관한 이천시립박물관에는 구석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과 함께 청자·분청·백자 등 도자기 1천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물 중 주류가 도자와 관련된 것은 물론 이천시가 도자 예술인과 관련 전문 인력이 모여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천시는 대한민국 최초로 공예 및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됐고(2010), 국내 창의도시 중 최초로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 의장도시로 선출됐다(2018).
■ 이천, 쌀과 도자기·충절의 고장
이천의 역사에서 쌀의 영광을 뺄 수 없다. 1997년에 박물관 건설을 계획할 때 명칭이 ‘농업박물관’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02년에 개관한 이천시립박물관은 2013년에 구조를 변경하고, 지난해에 건물을 신축하고 도자문화역사실을 새롭게 꾸며 재개관했다.
역사문화실은 ‘이천’의 지명 유래를 시작으로 고지도를 통해서 본 이천의 변천과 고대 이천인들의 생활과 토기사용, 설봉산성 출토유물을 통한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천지역의 위상을 보여 준다. 백제, 고구려, 신라 땅에 속했던 이천은 고려 초부터 ‘이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동국여지승람’에 왕건이 후백제군과 싸우기 위하여 복하천에 이르렀을 때 홍수가 나서 시내를 건널 수 없을 때 서목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너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에서 글자를 따서 이천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같은 책에 왕건이 이천에 군대를 주둔하고 점을 쳤는데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괘를 얻어 이천’이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천으로 불렸다. 1894년 갑오경장 때도 군이었던 이천이 시로 승격된 것은 1996년이다.
박물관 벽에 ‘수’(帥) 자 깃발이 걸려 있다. 어재연 장군의 지휘권을 나타내는 ‘수자기’는 신미양요 때 미군이 탈취해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던 것을 장기임대방식으로 강화역사박물관에 돌아온 것이다. 전시품은 실물 크기(4.15m x 4.4m)로 복제한 것이다.
현재 박물관 2층에 신미양요를 주제로 당시 전쟁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전시하는 ‘150주년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1871년 미국이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으로 침략했을 때 순국한, 어재연(魚在淵)장군과 조선군의 충절을 기리고 신미양요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자리이다. 당시 미 군함에 승선해 전쟁 과정을 지켜보았던 이탈리아 종군사진가 ‘펠리체 베아토’의 사진이다. 이천시 율면에서 태어나 자란 어재연 장군은 프랑스 군대가 침략한 병인양요(1866)와 미군이 침략한 신미양요(1871)에 참전했다. 병인양요 때 어재연은 우선봉장으로 강화도를 수비하였고, 5년 후 신미양요 때는 강화도 진무중군으로 동생 어재순과 6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미 해병대 전사에 실린 기록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그토록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역사실에서 고려시대 최고의 외교가로 강동6주를 되찾은 ‘장위공 서희’ 장군과 경기도 최초의 의병부대인 ‘이천수창의소’를 지휘한 김하락 선생, 민족운동가 구연영 선생을 만난다. 1895년 을미의병 때 이천의병을 이끌었던 구연영은 기독교를 접한 후 애국계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돼 순국했다. 이천은 경기도에서 의병운동이 최초로 벌어진 곳이다. 김하락 선생이 이끈 의병진 ‘이천수수창의소’는 이러한 사실을 알려준다. 3층 산수유 놀이마당이 재미있다. 교육실에서 다양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신축 건물 2층에서 구관으로 이동하는 통로가 있다. ‘ㅁ’자 형의 한옥 건물과 잔디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자문화역사실’은 이천 도자문화를 입체적으로 알려주는 전시공간이다. 이천 도자의 문화가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유물로 음미하는 이천의 역사와 문화
이천시립박물관은 개관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다양한 기획전과 특별전을 열었다. 삼국시대 토제벼루에서 조선시대 석제벼루까지 다양하게 변화되어 온 벼루를 재조명하고, 전통벼루의 명맥을 잇고 있는 현대 벼루장들의 작품을 소개한 2022년 상반기 기획전 ‘벼루硯_묵향墨香, 마음을 움직이다’를 비롯하여 2022 하반기 기획전 청청전 ‘3분의 2000’이 12월22일부터 2023년 3월까지 열린 예정이다.
그동안 열렸던 전시를 대략 살펴보면 이천시립박물의 고민과 지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전 ‘도자기속의 그림, 그림속의 도자기’(2014)은 1천년 이천 도자문화의 역사를 담은 명품 도자기들이 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이천도자기가 시간을 초월하여 현대예술로서 새롭게 재현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공과 함께하는 도제(徒弟) 연합작품전’(2016)은 이천시립박물관이 경기도 공사립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 기관으로 선정되어 열린 기획전이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전(2017)은 청산을 현실 도피 안식처로 보지 않고 현실 속 인간사에 공존하는 희로애락의 삶을 청산에 빗대어 보기 위해 마련한 전시였다. 기획전 ‘연지곤지’展(2017)은 전통 혼례복과 혼례상, 꽃가마라 불리는 사인교 등을 한자리에 모아 옛 조상들의 혼례문화를 한눈에 살펴보는 자리였다. ‘도자를 그리다’전(2018)은 용, 봉황, 연꽃 문양부터 의미를 알기 어려운 기하학 문양 등 도자의 몸 곳곳에 새겨진 흔적들을 통해 현재의 건강, 행복,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조상들의 염원을 살펴보는 기회였다. ‘약기, 이천을 치유하다’(2019)는 옛 기구인 복령꼬챙이, 약재를 자르는 협도, 약탕관, 약숟가락, 약저울 등 우리 조상들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약재를 만드는데 쓰였던 기구들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쇠뿔에 혼을 담아 맥을 잇다’전(2021)은 경기 제29호 무형문화재 화각장 故 한춘섭과 그의 이수자 한기호의 작품을 선보인 자리였다. 소뿔을 얇고 투명하게 만든 각지 안쪽 면에 문양을 그리고 채색하여 목기물 위에 덧붙여 완성하는 화각은 오직 우리나라만의 전통공예품이다. 기획전 ‘실로 맺은 연’은 실을 통해 이천문화재단과 한 가족이 되어 시민들과 새로운 연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개관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 ‘빗장을 열다’(2021)는 시립박물관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관객 참여를 통해 박물관이 나아갈 미래를 전망해보는 자리였다.
■ 이천, 세계로 향하는 한국의 도자문화 산실
이천시립박물관은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천과 자매도시인 세토시에서 ‘한국의 고도자전-이천시립박물관 소장 명품도자전’(2014)을 열어 민속공예부문 유네스코 창의도시 이천의 도자문화를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다. ‘세토 도자전’(2016)은 일본 세토시 자매결연 10주년과 제30회 이천도자기축제를 기념한 전시였다. 2019년에는 한·중 문화·예술 분야의 교류를 위해 이천시를 방문한 현대 중국의 공예작가 작가 23명의 작품을 이천시립박물관에 기증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화각공예 체험교육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나라만의 전통공예인 화각공예 프로그램이다. 시립박물관 잔디마당에서 정기적으로 흥겨운 공연이 펼쳐진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이천거북놀이’이다.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놀이로 펼쳐진 이 공연을 통해 가족과 이천의 발전과 안녕을 기원한다.
이천시립박물관을 품고 있는 설봉산과 설봉호수 주변은 문화 시설로 가득하다. 1564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설봉서원을 비롯하여 설봉국제조각공원, 이천시립월전미술관, 도자기공원, 문학공원이 늘어서 있는 여유롭고 넉넉한 공간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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