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세월이 가르쳐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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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홍 강남대 교수

나이 들면서 얻은 좋은 배움 하나가 있다. 바로 천천히 운전할 줄 아는 능력이다. 언젠가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천천히 운전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젊을 때여서인지 말이야 막걸리야 하며 흘려듣고 말았다. 그때는 속도제한 아래로 가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속도제한이 없는 구간이 있는 아우토반을 달리며 학생 처지의 차라서 더 빨리 달릴 수 없는 걸 아쉬워하며 빠른 속도감을 만끽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차의 진행을 가로막는 앞의 차들이 한심하다 못해 부아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빨리 달리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지만, 그러려면 그에 합당한 차선을 타면 되는데 느리게 달리면서 굳이 1차선을 고집하는 심보는 뭐란 말인가.

클랙슨 울리는 걸 무척 삼가는 독일에서도 저런 경우에는 사정이 없다. 다같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다른 데서 그렇게 경적을 울리면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속도제한을 넘지 않고서도 느긋하게 달릴 줄 알게 됐다. 앞에서 꾸물거려도 이제는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이해가 된다. 지인 중에 느지막이 학원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 언젠가 이런 소리를 했다. 처음 한 6~7개월 운전하다 보니 동네가 작아서 그런지 신호 순서를 다 외우게 됐단다. 그때부터 효율성을 추구하는 성과주의란 뱀이 머리에 똬리를 틀었단다. 그래서 유난히 신호대기가 긴 신호가 바뀐다 싶으면 길을 우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리하기도 하면서 빨리빨리를 실천해 갔다.

그러자니 앞에서 꾸물거리는 차들에 화가 나 어느 순간 욕이 튀어나오더란다. 아이들 태운 차에서…. 그 순간 정신의 급브레이크를 밟고는 그 효율이 대체 얼마나 되나 짚어보았더니 아무래도 위험 가능성이며 스트레스를 상쇄하고 남을 정도는 되지 않겠다 싶더란다. 그때부터 애써 마음을 비우며 신호를 생각하지 않고 따르려고 했단다. 녹색 신호등이면 가고, 다른 불이면 멈추고. 그러며 얼마 지나니 운전하며 피로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거의 없어졌단다.

사회의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줄에서 앞에 선 사람은 남보다 정신을 더 차려야 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에서 맨 앞의 차를 모는 사람이 해찰해 시간을 까먹으면 혼자 시간만 버리는 게 아니라 뒤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시간을 빼앗는 셈이다. 그래서 그건 일종의 에티켓이자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실수하기도 한다. 젊어서는 용납되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화를 내기 전에 분노의 클랙슨이 아니라 넌지시 보내는 주의의 짧은 경적을 보내거나 아니면 기다려줄 줄도 알게 됐다. 바로 나이의 선물이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나무들이 나뭇잎 다 떨구고 시린 알몸으로 침묵의 동안거 수양에 들어갔다. 세월 따라 결따라 살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세월이 가르쳐준 그 진솔함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독교육복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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