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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그곳&] 선 넘은 외국어 표기… ‘노인 배제문화’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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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그곳&] 선 넘은 외국어 표기… ‘노인 배제문화’ 부채질

멀쩡한 ‘경로당’ 대신 ‘시니어클럽’... 백화점 옷 소재·음식 메뉴도 영어
도내 의·식·주 생활 전반 ‘수두룩’... 국민 이해도 조사 70세 이상 노인
3천500개 단어 중 60% 이상 이해 242개 불과… 규제 법안 등 개선 필요

“멀쩡한 ‘경로당’이라는 말 대신 ‘시니어클럽’이라고 쓰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경기도내 의·식·주 생활 전반 곳곳에 한글 없이 외국어 표기 남용이 성행하며 암묵적인 ‘NO 노인존’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오전 수원특례시 권선구 한 백화점. 같은 층에 입점한 옷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한글 표지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계산대, 탈의실 등 모두 영어로만 표기돼 있었으며 옷의 소재나 체형에 맞는 옷 추천도 한글이 아닌 영어였다.

백화점에서 만난 김을옥씨(67·여)는 “백화점에는 외국 브랜드가 다수 입점해 있기도 하고 젊은 사람이 주 고객층이다 보니 영어 안내판이 많은 걸 이해한다”면서도 “영어로 표기돼 있는 걸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워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며 유추를 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날 찾은 화성시 반송동에 위치한 한 양식집 입구에 놓인 입간판의 메뉴도 모두 영어로 적혀있었다. 양식집 맞은 편에 있는 카페 역시 메뉴가 영어로 작성돼 옆에 그려진 음료 그림을 보고 메뉴를 유추해야만 했다.

외국어 남용은 거주지까지 잠식했다. 수원특례시 팔달구 한 아파트 단지는 경로당은 시니어클럽, 복지시설은 그리너리라운지 등으로 표기돼 있었다. 어린 손자와 단지 내 놀이터를 찾은 양순자씨(70·여)는 “지금은 용어들에 적응했지만, 처음엔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주변에 물어봐야 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한글 표시 혹은 설명 없이 영어로만 표기되는 표시판, 메뉴 등이 늘어나며 노인을 배제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글문화연대가 국민 1만1천07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외래어·외국어에 대한 국민 이해도 조사’에 따르면 총 3천500개의 단어 중 70세 이상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해했다고 답한 단어는 242개로 6.9%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런 행태를 제재할 법안이 없다는 점이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상 광고물은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기해야 하나 이는 권장 사안일 뿐더러 간판만 해당한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외국어 표기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마케팅 수단 중 하나”라며 “이는 노인을 포함해 영어 취약자에겐 모두 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수진기자·이다빈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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