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아침] 이제 유가족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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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재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교수

필자는 4월 16일생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매년 생일에는 기쁨보다는 애도의 마음으로 보내게 된다.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 살릴 수 있었던 소중한 생명들이 안타깝게 꺼져 가던 모습은 모두에게 아픔과 충격이었다. 2022년 10월29일 이태원에서 벌어졌던 참사도 마찬가지다. 서울 한복판에서 언제나 붐비던 거리를 걸어간 것뿐인데 157명의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직 11명이 입원 치료 중이다.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의료진이 밤낮을 고생을 하는데, 젊고 건강했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고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에 너무 허망했다.

남은 가족들의 슬픔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소중한 자식이나 가족을 갑자기 잃게 되었을 때 그 충격과 아픔은 미루어 짐작조차 어렵다. 사망 소식을 들은 직후에는 경황도 없이 장례를 치르고, 이후에도 며칠이 지나야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엔 단원고 학생들이 많아 장례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유가족들이 모여 슬픔을 나누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

이번 참사는 유가족들이 모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합동분향소에는 유족의 의견도 묻지 않고 희생자의 영정사진이나 위패를 두지 않았다. 사망자 가족들에게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하는데 100명이든 200명이든 일일이 확인해서 개별 유족들의 뜻에 따랐어야 했다. 장례를 마치면 말 못하고 죽은 내 가족의 억울함을 알려야 하는데 함께 고통받는 다른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유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정치적이라고 호도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교통사고나 산재사고가 나면 보험회사나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보상이나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참사의 경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지자체와 국가의 책임이 분명하다. 매년 있어 왔던 행사와 인파였고 그동안은 적절한 경찰의 통제하에 사고없이 지나왔는데 유독 올해 그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던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참사 이후 보여줬던 지자체장이나 행정 지도자들의 모습에서는 진지한 사과나 유가족들을 위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보상이나 배상도 생명과 바꿀 수 없겠지만, 생존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슬픔을 나누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단식을 하고 있는 유가족 옆에서 피자를 먹는 파렴치한 행동들은 없어야 하고, 언론은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상처받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사실을 숨기고 조작했을 때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길재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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