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대참사] 청춘 스러진 자리, 싹트는 ‘배려 문화’

타인 위해 심폐소생술 배우고... 출퇴근 탑승전쟁에도 질서정연
SNS 사망자 모욕글 자제 독려 “이타주의 지속... 갈등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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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슬픔… 우리 함께 나눠요”

청춘들이 스러진 ‘이태원 핼러윈 대참사’의 슬픔 속에서도 이타주의가 싹트고 있다.

압사 사고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서로를 더욱 배려하고 있고, 안중에 없던 응급처치법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관심이 커지는 등 남을 위한 사회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슬픔을 딛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의료계 종사자 이보람씨(31·여·가명)는 1일 수인분당선 야탑역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7년째 서울로 출퇴근 중인 이씨는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승객들을 실은 전동열차를 보면 한숨부터 내쉰 채 ‘탑승 전쟁’을 치렀다. 밀리기도, 밀기도 하며 우여곡절 끝에 편안한 자리에 서는 게 아침의 시작이었다.

일상이었던 이 같은 행동은 이태원 핼러윈 대참사로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이렇게 생각한 건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질서정연하게 탑승하는 다른 승객들 덕분에 그의 재킷은 이날 평소와는 다르게 꾸깃꾸깃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경찰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모습을 뉴스로 본 김슬지씨(34·여·가명). 응급조치 교육이 의무화(학교보건법)된 지난 2008년 이전에 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흐릿한 기억만이 남아 있는 응급구호 조치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게 됐다.

김씨는 “서울 한복판에서 수백명의 또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울컥하면서도 우리 가족과 친구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도대체 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수십번 했다”며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를 배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사고 이후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에 접수된 관련 문의는 약 두 배 늘어났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입에 담지도 못할 사망자에 대한 모욕 등이 올라오면서 누리꾼들은 이를 자제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갈등 양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사 발생 시 언론사의 생중계로 국민이 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만큼 사회 인식 변화는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재난 사건이 추후 정치적 공세로 쟁점화되는 게 우리 사회의 해묵은 현상인 만큼 민·관 모두가 과도한 갈등 유발을 자제한 채 발전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이버 폭력 전문가인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 변호사는 “익명으로 무분별하게 게재되는 악성 댓글의 경우 실명제 등을 도입해 막아야 한다”며 “사이버 폭력은 신체 폭력보다 경미하다는 인식이 있기에 현실적인 처벌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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