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길 위의 비극, 로드킬

image
우동걸 국립생태원 박사

몇 해 전 깊은 밤, 차를 몰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별안간 길섶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찰나의 순간, 어찌 손쓸 틈도 없이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한동안 운전대 잡기가 힘겨웠다. 충돌 당시 전해진 둔탁한 울림은 여전히 생생하다. 도로 위 많은 동물 주검을 지나치면서 설마 내가 사고를 내진 않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동물이 차량과 충돌해 죽거나 다치는 사고를 우리는 ‘로드킬’이라 부른다.

전국 도로 연장은 11만3천405㎞에 달하며 그 위를 2천507만대의 차량이 달린다. 거미줄처럼 얽힌 도로와 도로 사이사이에서 야생동물이 살아간다. 동물(動物)은 말 그대로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다. 야생동물이 살아가려면 부단히 이동하며 먹이를 구하고 잠자리를 정하며 짝을 찾아다녀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의 길을 건너 다닐 수 밖에 없다. 산과 산, 산과 들을 잇는 동물 길과 도시와 도시를 잇는 사람 길의 어긋난 만남, 비극의 시작이다.

해마다 우리나라 도로에서는 고라니 6만여마리를 비롯해 약 200만마리의 척추동물이 로드킬로 희생된다. 야생동물 개체군 존속과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사람의 안전 또한 위협받는다. 동물을 피하려다 도로를 이탈하거나 다른 차량과 충돌하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은 가을철에 로드킬이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이즈음 희생되는 개체들은 대부분 올봄에 태어난 아성체다. 사람으로 따지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해당한다. 야생의 세계에서 포유류 새끼들은 어느 정도 자라나면 어미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어미에게 있어 새끼는 자기 배 속에 품고 젖을 먹인 핏줄이 아니라 제한된 서식공간과 자원을 두고 다투어야 하는 경쟁자다. 바야흐로 가을이 되면 폭풍 성장한 새끼들은 어미 품을 떠나 새로운 서식지를 찾기 위한 대장정에 돌입한다. 이 과정에서 낯선 공간을 탐색하며 끊임없이 도로를 건너야만 한다. 어쩌면 야생동물에게 있어 혹독한 시련의 계절은 정작 겨울이 아닌 가을일 수 있다. 하늘은 높아지고 동면을 앞둔 야생동물은 살찌는 한편, 도로 위의 죽음은 늘어난다.

틀에 박힌 말이지만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전방 주시와 규정속도 준수 등 안전운전이 우선이다. 주행 중 동물을 발견했을 때는 가급적 급정거나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을 자제해야 한다. 상향등을 끄고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경적을 울려 동물이 도로 밖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도로 위 사체를 발견하면 도로관리기관에 신고하는 것이 좋다. 안전한 곳에 정차하고 정부 통합민원서비스 110으로 신고해 도로관리기관에 알려준다. 사체가 도로에 오랫동안 방치될 경우 이를 피하고자 자동차들의 곡예운전이 계속된다. 또한 사체를 뜯어먹기 위해 도로로 접근하는 동물들로 인한 2차 로드킬이 발생하기도 한다. 불운은 불운을 낳고, 죽음은 죽음을 몰고 온다.

정부는 해마다 로드킬 다발 구간을 중심으로 저감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다양한 도로 조건과 주변 여건으로 인해 도로 전 구간의 로드킬을 획기적으로 줄이기엔 역부족이다. 편리한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 가볍게 넘기기엔, 로드킬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윤리적 측면, 국민안전, 국민정신건강, 자동차 수리비용, 생물다양성 감소 등 로드킬로 인한 피해는 다차원적이다. 로드킬 문제에 대한 꾸준한 사회적 관심과 지속적인 저감조치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절정에 다다른 단풍잎만큼이나 붉디붉은 도로 위 선혈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볼 때다. 눈부신 가을 날, 길 위에 선 모든 운전자와 뭇 생명의 안녕을 빈다.

우동걸 국립생태원 박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