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1. 수원시립미술관

화성의 숨결과 현대미술... 아름다운 공존 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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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을 주제로 국공립미술관 10곳의 소장품을 전시중인《우리가 마주한 찰나》가 열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화성의 숨결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예술공간!” 수원시립미술관을 소개하는 글이다. 화성행궁 옆에 위치한 수원시립미술관은 재미있는 건축물이다. 밖에서 보면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밋밋하게 보이지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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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특례시 팔달구에 위치한 수원시립미술관은 시민의 화성과 현대를 잇는 공간이자, 시민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과거 ‘문화재’와 현재 ‘미술관’을 아우르는 열린 공간

미술관의 외벽이 독특하다. 진회색 계열의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한 방식은 한옥인 행궁과 잘 어울린다. 상층부를 한옥의 처마처럼 비스듬한 곡면의 스카이라인을 통해 행궁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도 주목된다. 미술관 전면의 투명유리창을 통해 광장과 화성행궁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는 자랑이다. 문화유산이라는 과거와 미술관 전시품이라는 현재를 아우른 소통의 장인 셈이다. 옛길을 살려 광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동선을 연출해 관람객들의 발길이 미술관에서 광장으로 향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칭찬할 만하다. 미술관 안내를 맡아준 박현주 주무관이 건축 디자인의 핵심을 정리해 준다. “화성 행궁의 미학적인 면을 해치지 않으면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지요. 그 바탕에는 정조의 철학을 계승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수원시립미술관(관장 김진엽)은 수원시 팔달구 신풍로 22 일원 6천400㎡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연면적 9천652㎡의 규모를 자랑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에는 2개의 기획전시공간, 카페테리아, 뮤지엄샵 등의 시설을 갖추었고, 2층에는 2개의 기획전시공간과 교육실과 학예실 등이, 지하에는 수장고와 79대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 옥상의 개방형 정원은 관람시간 이후에도 이용할 수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옥상을 산책하며 화성행궁과 팔달산을 바라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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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넷 안에서 다양한 사물에 조명변화로 그림자의 변화를 보여주는 아티스트 듀오 뮌의 오디토리움. 윤원규기자

■ 늦게 출발했지만 알차고 풍성하게

수원시립미술관은 2015년에 개관했다. 7천여 가구가 넘는 ‘수원 아이파크 시티’를 조성하면서 얻은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던 현대산업개발이 인구 120만의 수원시에 공립미술관이 없음을 알고 건립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총 3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을 준공하고 소유권 일체를 수원시에 기증한다. 미술관 1층에 있는 ‘포니정홀’은 이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화성을 건설한 조선 22대 임금 정조와 ‘포니정’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얼굴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정 명예회장은 1967년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으로 취임하며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한 장본인입니다. 이 미술관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주역인 고 정세영 회장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때부터 얼마 전까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란 긴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만석공원의 ‘수원시립만석전시관(구 수원미술전시관)’, 파장동의 ‘수원시립어린이미술체험관(구 어린이생태미술체험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까지 4개의 미술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는 광교신도시 내 수원컨벤션센터에 조성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장안구 송죽동 만석공원 내에 위치한 수원시립만석전시관은 기획전시를 비롯해 연중 다양하고 친근한 전시로 시민과 만나는 공간이다. 수원시립어린이미술체험관은 어린이들의 생태문화예술 교육터전으로 자연과 예술이 결합한 융합교육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초기에 대외적으로 그 존재감을 알리는데 성공한다. 2016년에 개최됐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가상현실’ 전시의 도록이 iF디자인 어워드 2017 커뮤니케이션 디자인부문에 수상한 것이다.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손꼽히는 iF디자인 어워드의 수상을 통해 신진 미술관인 수원시립미술관의 전시가 국제무대에 소개되고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같은 해 11월에 수원시립미술관은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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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정홀에는 정조대왕의 수원화성과 故정세영 명예회장의 포니 이야기가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수원의 화가 나혜석과 백영수를 추억하다

2층 전시실에서 마주한 서양화가 정월 나혜석(1896~ 1948)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한동안 멈추게 한다. 1928년경에 그린 ‘자화상’에서 짙은 우수가 느껴진다. 나혜석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나혜석의 막내아들 김건이 수원시에 기증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나혜석은 수원 출신이다. 미술관에서 5분쯤 걸으면 나혜석의 생가터가 있다. 시대를 앞선 여성 나혜석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몇 점 남아 있지 않은데, 수원시립미술관은 5점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나혜석의 사진과 그에 관한 기사를 실은 신문, 글을 투고한 잡지도 소장하고 있다. 한편 2020년의 기획전 ‘백년을 거닐다: 백영수 1922~ 2018’은 수원 태생으로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한 백영수 화백의 작품세계를 살피는 특별한 기회였다. 백영수는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중섭 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한 1세대 작가이다. 서정적이면서 조화로운 경향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백 작가는 2016년에 대한민국 문화예술 은관훈장을 수훈한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나혜석의 작품을 수집하고 ‘첼리스트 문태국이 만난 백영수’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수원 출신의 화가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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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시민들에게 무료로 다양한 미술·디자인·건축 등 다양한 서적이 제공되는 ‘미술관 라이브러리’/ 전현선 작가의 ‘나란히 걷는 낮과 밤/ 수원의 대표화가 나혜석의 자화상. 윤원규기자

미술은 역시 현장이 중요하다. 발품을 팔아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주해야 온전한 만남, 영혼의 깊은 울림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2022 소장품 교류기획전 ‘우리가 마주한 찰나’는 주목되는 기획이다. 무엇보다 볼거리가 풍성하다. 수원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경기도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오산시립미술관등에서 작품을 대여해온다. 전국에 흩어져 소장된 한 작가의 작품을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주제가 ‘우리가 마주한 찰나’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총 3부의 구성으로 24팀의 작가를 소개한다. 1부 ‘자연’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고 살아가는 자연을 살펴본다. 자연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소재이다. 2부 ‘인간’과 3부 ‘그 너머’는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내면과 예술에 관한 사유를 담은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구름이 화폭에 담겨 있다. 구름만큼 변화무쌍한 것이 또 있을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푸른 나무가 가득한 숲과 만나고, 타다 남은 숯덩이를 펼친 작품도 만난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의 작품은 역시 인기가 많다. 작품 앞에서 스스로 나의 내면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찰나의 시간들을 소중히 인식하고 마주하는 순간, 일상은 예술 그 자체가 된다”는 해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볼거리는 미술 작품만이 아니다. 미술관 곳곳에서 만나는 휴식공간도 매력적이다. 건물 구석에 숨어 있는 쉼터나 야외가 훤히 보이는 실내 카페는 물론 미술, 디자인, 건축 등의 전문 도서와 다양한 정기간행물을 열람할 수 있는 ‘미술관 라이브러리’도 관람객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동적(動的)’이다. ‘미술관에서 요가를’, ‘비포 선셋’은 미술관의 역할이 어떻게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열린 공간이다. 입장이 마감된 이후에도 옥상을 올라갈 수 있다. 옥상에 올라 사계절 변신하는 팔달산과 그 산자락에 안긴 화성행궁과 때로는 오고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언제 찾아도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갖추고 있다. 전통과 현실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 도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복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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