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역사 깃든 제분·방직공장... 근대산업 유산 지키자”

만석동 옛 사조동아원·동일방직 부지 등 개발 본격화... 주변 근대건축물 보존 목소리
市 “사업자와 조율”... 사측 “공간 조성 불가, 역사기록물 남기는 방법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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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일방직과 사조동아원(동아제분), 사이토정미소 등 근대 산업시설이 밀집한 인천 동구 만석동30의1 일대의 재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주요 근대 건축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용준기자

“명절마다 동네 사람들에게 밀가루를 나눠줬는데.... 추억이 모두 사라져 아쉽네요.”

10일 오전 9시 인천 동구 만석동30의1 밀가루 공장이던 옛 사조동아원(동아제분) 앞. 30~40년 전에는 6층짜리 공장이 휴일도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국내 밀가루 공급을 맡아 왔지만, 지금은 창고로 쓰이면서 조용하다. 공장 벽에 쓰인 ‘맥선’이라는 밀가루 상표명은 사조동아원의 옛 명성만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정선하씨(66)는 “30~40년 전에는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던 공장이었는데, 이젠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라며 “후세가 피란민과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 화수부두 일대의 사조동아원, 그리고 대한제분, 삼화제분 등을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인 밀가루를 생산한 곳으로 기억한다.

이 공장의 400m 뒤편 길가에는 옛 ‘사이토 정미소’가 있다. 일제가 만든 정미소지만, 이후 삼화제분이 인수해 밀가루 공장과 연계, 인천의 관련 산업의 발전을 이끈 곳이다. 현재 인천시로부터 지정받은 근대건축물 중 하나다. 맞은편에 있는 동일방직 공장도 멈춰선 지 오래다. 동일방직과 혁진산업 등 인근 대규모 공장 단지는 이제 모든 기계를 멈춰세운 채 인천의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이곳의 공장 덕분에 만석동과 화수동 인근은 ‘노동자의 길’이라고 불릴 정도로 근·현대 노동자의 삶을 곳곳에 담고 있다.

정씨는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을 보면 ‘옛 건물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추억에 잠길 때가 있다”고 했다.

인천시가 동구 만석동의 옛 사조동아원과 동일방직 등의 부지에 대한 개발을 본격화한다.

시에 따르면 최근 민간사업자인 ㈜아이앤케이 디벨롭먼트는 옛 사조동아원 건물을 헐고 600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만석지구 특별계획구역3 도시계획변경 협상안 제안서’를 제출했다. 시는 이를 위해 이곳을 준공업지역에서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를 바꾸는 대신, 민간사업자가 개발이익의 일부를 공공에 기여하도록 현재 사전협상을 벌이고 있다. 시의 사전협상제도 2호다.

사업자는 공공기여 방안으로 공원 1곳과 도로 2곳의 노선 정비를 제안했다. 하지만 시는 많은 주민이 오갈 수 있도록 공원의 위치를 옮겨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근대건축물의 보존 및 기록이라도 남기기 위해 사업자와 조율을 하고 있다. 일대가 국내 최초의 ‘밀가루 공장’이라는 역사가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근대 노동 역사의 산실인 지역의 근대건축물 보존과 기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현재 사업자과 협상 중인 만큼, 단지의 배치 구조 등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간사업자 관계자는 “근대건축물을 기록할 만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신 의미와 역사를 자료로 만들어 기록물을 남기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사라지는 ‘근대건축물’ 보존 대책 시급

만석지구 옛 동일방직·사조동아원 공장부지 등 개발 사업에 풍전등화

지역 대표적 산업유산 보호 목소리

인천 동구 만석지구의 옛 동일방직·사조동아원 공장 부지 등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근대건축물 역사 기록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0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중구의 답동성당 옆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던 인천 가톨릭회관은 주차장 확보를 명분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어 120년의 역사가 깃든 애경의 비누공장도 헌 뒤 주차장으로 운영 중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0년 생긴 주점인 송주옥과 조일양조장, 동방극장 모두 현재는 모습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모두 지역 내 민간사업자가 추진한 각종 개발사업 탓이다. 근대건축물인데도 사유 재산이다보니 시가 보존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록과 상징물의 건립도 공공이 아닌 민간이 할 경우 사업성 등에 밀려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역 안팎에서는 이번 사조동아원을 비롯해 인근 동일방직 등은 인천을 대표하는 근대건축물이자 산업유산인 만큼, 역사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인천시는 이 일대 약 17만6천331㎡를 만석지구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했다. 공업과 주거기능이 혼재한 지역의 체계적인 관리와 대규모 공장 이전 부지에 따른 근대건축물 훼손 및 난개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현재 인천에는 근대건축물 개발 요구를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례 등 법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심지어 인천시가 지난 2019년 492곳의 근대건축물 목록을 만들었지만, 소유자 반발을 우려해 목록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부산시는 지난 2009년 ‘근대건축물 보호 및 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해마다 252곳의 근대건축물 목록을 관리하고 있다. 또 이 같은 근대건축물을 문화·관광 인프라로 확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민간 소유인 한성은행 부산지점인 청자빌딩을 매입해 현재 부산시의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근대건축물은 사유재산이라 강제할 수 없지만, 위원회와 제도를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서울시도 지난 2015년 근대건축물 등을 보존하는 ‘서울시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미래유산전담팀을 운영하는 등 근대건축물 보존에 나서고 있다.

박진호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대건축물에 대한 자료와 보존을 위한 절차를 제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인천시가 체계만 제대로 마련한다면, 사유 재산을 매입하는 사례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근대건축물을 보존할 수는 없겠지만,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지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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