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르르’ 암컷을 부르는 수컷 귀뚜라미는 앞날개를 열심히 비벼 댄다. ‘끼룩끼룩’ 시베리아에서 출발한 기러기 제1진은 일찌감치 한반도를 찾아왔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 찬 도심에도 기어이 가을은 온다. 뜨거운 여름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않고, 창밖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감을 가득 안겨준다. 개인적으론 1년 중 서늘함이 반가운 이 시기를 가장 반긴다. 하늘은 높되 여전히 숲은 푸르다. 만추의 서글픔과는 아직 거리가 있어 안도한다.
뭇 생물들은 저마다 생명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가까이 존재하는 자연과 생명이지만 사실 대다수 시민들은 자연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동네에 피어 있는 야생화나 새에 대한 지식보다 날마다 접하는 주가지수나 연예계 뉴스에 익숙하다. 자연과 멀어져 있기에 그만큼 더 쉽게 자연의 훼손과 소멸을 간과하게 된다.
우리 곁에 살아가는 생명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는 보다 지속 가능하고 자연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우선 일상 속 자연의 존재에 눈을 뜨는 것이 시작이다. 자연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다 보면 경외심과 기쁨이 따라온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생명이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보다 의미를 확장시키자면 시민과학(Citizen Science)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시민과학은 대중 모두가 함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과학을 일컫는다. 시민들이 협업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과학적인 성과를 이뤄 갈 수 있다. 특히 생태학에 있어서는 일상에서 시민들의 생물 관찰 기록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학자나 전문가가 매 순간 모든 곳에서 생물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처리 기술과 휴대 전자기기 발달로 시민과학의 중요성과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시민과학 앱을 사용하면 휴대전화로 쉽게 발견한 생물을 기록할 수 있다. 굳이 멀리 갈 필요는 없다. 부담 갖지 말고 주변에 눈에 잘 띄는 동식물을 중심으로 사진과 관찰 기록을 업로드하면 된다. 동네 공원 개화 달력 만들기, 유리창 충돌 조류 기록 등 특정 미션에 참여할 수도, 새로운 미션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꾸준히 참여하다 보면 관찰 기록이 쌓여 가며 성취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관찰한 종(種)의 이름을 몰라도 된다. 시민과학에 참여하는 재야의 고수들과 전문가들이 종 이름을 알려주기도 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발휘돼 비로소 자연을 지킬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거듭나게 된다.
꼭 멸종위기종, 희귀종을 찾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주변 생물 정보는 생물계절, 기후변화, 외래종 확산, 서식종의 변화 등 생태계 보전과 관리에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지금까지 시민 활동에 의해 수원청개구리 울음소리 수집, 제비 도래 시기 파악, 남방큰돌고래 분포 조사 등의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내가 사는 고장에 어떠한 생물들이 깃들어 있는지 자랑해보자. 시민 한 명 한 명의 관찰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위대한 우리 동네 생태지도가 만들어진다. ‘2022년 9월 12일 수원시 영통구 XX아파트 정원에서 김XX님이 촬영한 여치 사진’은 절대적 고유성을 가지며 대체 불가한 가치를 가진 기록이다. 생명의 존재를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야생생물과 과학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 더불어 시민과학자가 되어 보자.
우동걸 국립생태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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