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문화융성과 컬처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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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마지막 편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며 문화강국을 만들고 싶어 했다. 1947년 ‘나의 소원’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글이다.

21세기에 이른 지금 세계 각국은 문화융성에 방점을 찍고 산업을 개발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과거처럼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세계 주류에 진입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1990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페테르 두엘룬 교수가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를 합성한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를 주창했다. 문화와 산업의 융합, 문화 예술을 산업으로 개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 질서 만들기 등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 문화를 접목하는 작업이 21세기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실제로 지금 세계 각국은 컬처노믹스의 꽃을 피운다. 전자제품에서부터 일상 도구까지 문화의 서사(敍事)를 접목하지 않은 상품은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철강과 조선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면서 쇠락하던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있는 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을 세워 도시를 다시 살렸다. 또한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 피게레스는 달리 미술관 하나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광복 77년이 지나 오늘에 이른 우리는 광복 직후 다시 일으켜 세울 우리나라를 문화가 융성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외친 백범 김구 선생의 선견지명이 어느 정도 이뤄졌을까.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문화를 융성시켜 문화강국을 만들려면 먼저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역사·철학이 바로 세워져야 문화가 융성할 수 있다. 문화는 스스로 움직이며 세포분열로 확산하는 생명력이 있다. 이 살아 움직이는 문화를 창조하고 누리는 원천(源泉)이 인문학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이 1년에 책을 4.5권 읽는다고 한다. 이 숫자에는 중요한 의미 하나가 숨겨져 있다. 이 수치는 이보다 더 많이 읽은 분들과 아예 한 권도 안 읽는 분들을 섞어서 평균 낸 것이다.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왜 이런 건 밝히지 않는지 한번 새겨보고, 1년에 나는 책을 몇 권 읽는지 남들이 한껏 높여 놓은 통계를 얼마나 삭감하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라는 의미가 이 수치에 숨겨져 있다.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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