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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죽어가는 섬유 산업...사람도 일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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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죽어가는 섬유 산업...사람도 일감도 없다

道 전국 생산 20% 차지했지만 매출 직격탄… 줄도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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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포천 한 섬유염색 공장의 기계들이 작동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김현수기자

[집중취재] 도내 섬유업계 힘겨운 나날

“일할 사람도 없고, 일감도 없고 말 그대로 섬유산업이 말라가고 있네요”

대규모 섬유·의료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따른 수출량 감소와 이에 따른 고용 악화로 경기도 섬유업계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도내 영세 섬유업체들은 직원 월급조차 제때 충당할 수 없는 위기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주시에서 섬유염색 공장을 운영하는 A씨(60)는 1일 오후 8시 늦은 시간이지만 생산라인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직원들이 했을 업무지만, 야간시간대 근무직원을 채용하지 않으면서 A씨의 일과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매출이 하향 곡선을 그려 인건비 부담을 없애고자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이날 포천시 한 방직공장에서 만난 사장 B씨(50대) 역시 한숨부터 내쉬었다. 직원 5명의 월급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회사가 어려워져 주간 근무 전환도 모자라 주 4일제로의 변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런 데다, 최근 부자재 가격도 폭등하면서 공장운영을 위해 대출도 알아보고 있지만 여신한도에 막혀 B씨의 시름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전국 섬유산업의 20%를 생산하는 경기도 섬유업계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지난 2016년 시작된 대형 섬유·의류 유통회사의 잇따른 이탈로 영세업체간 과다경쟁이 일어나면서 수익성 악화, 투자 감소, 지역 섬유기업의 제품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섬유산업연합회 따르면 상당수 업체가 코로나19 이전 대비 50% 이하로 매출이 감소하고, 섬유업체 폐수사용량이 전년대비 50% 이상 떨어져 공장 가동률 역시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군다나 매년 도내 섬유업계 종사자 수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고용난에 허덕이는 영세 업체들의 연쇄 도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기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경기도 섬유산업은 전국에서 큰 비중을 자랑하는데, 점차 근간이 흔들리면서 지역경제까지 휘청거리고 있다”면서 “경영자 외에 섬유 노동자들 역시 이같은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고용에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고령화·고용난 호소... 실질적 지원체계 절실

경기권 주력산업인 섬유산업의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가 꾸준히 줄어드는 데다 코로나 펜데믹까지 덮치면서 고사 위기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내 영세 섬유업체들은 도의 지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고 세분화 돼 있지 않아 실질적인 지원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1일 경기도와 경기섬유산업연합회 등에 따르면 경기도는 전체 국가섬유산업의 약 19%를 차지하며, 섬유원단 생산 공급 최대 지역으로서 수출 비중도 지난 2000년 10.5%에서 지난 2020년 20.5%로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상의 이면에는 경기지역 섬유업계의 줄도산 위기가 가려져 있었다. 섬유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경원권(양주·포천·동두천·의정부)의 종사자 수는 지난 2016년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7년 2만4천549명, 2018년 2만3천370명, 2019년 2만2천178명이다.

이러한 추세는 섬유산업 실업급여 지급건수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1월~8월 섬유산업 실업급여 지급자 수는 총 729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5% 증가했다.

특히 섬유 노동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임시·일용근로자 비중이 지난 2019년 22.9%에서 지난해 24.6%로 1.7%p 증가해 고용의 질도 악화됐다.

이렇다 보니 섬유업계는 고령화와 고용난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고자 시설 투자 등으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지만, 부자재 및 인건비 부담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장 시스템을 디지털·자동화를 꾀하고자 정부에서 지원하는 스마트팩토리 사업에도 신청을 하고 있지만, 경기북부 섬유기업의 90% 이상이 10인 이하 소공인 기업인 만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입찰 단계에서부터 번번히 고배를 마시고 있는 실정이다.

섬유 노동자들 역시 업계의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고용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실시한 경기북부 섬유기업 노동자 실태조사에서 섬유기업 노동자 80%가 가까운 미래에 섬유산업의 실업과 고용축소를 전망한다고 답했다.

이밖에도 경기도의 미온적인 지원정책이 섬유산업 위기에 한 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가 경기섬유마케팅센터 운영하고, 신소재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되려 지원규모가 지난해 75억원에서 62억원을 줄어 섬유업계는 도의 지원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올해 지원예산이 준 것은 일몰 사업을 제외하다 보니 그런 것”이라며 “섬유산업이 침체위기인 것을 느끼고 현장에서 기업의 애로점을 공유하는 등 지원사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전문가 제언] “섬유산업 발전 위해 인프라 구축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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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용 인하대 화학공학과 명예교수

“섬유산업이 겪는 각종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선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합니다”

전한용 인하대학교 화학공학과 명예교수는 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이 침체되는 이유는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과 달리 원천이나 독자 기술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지자체를 중심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만들어진다면 섬유산업 역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특히 정부와 지자체, 산학관 등이 연계한 ‘컨소시엄’을 만든다면 이를 바탕으로 외국처럼 섬유산업을 키울 수도 있다”며 “기술이 생긴다는 것은 과거 일본의 수출금지 등을 이유로 우리나라가 곤욕을 치르는 일도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 한국섬유공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산업용 유기재료와 하이테크섬유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불리는 그는 여러 단체가 모인 컨소시엄에선 지자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지자체는 지역 내 섬유산업 업체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집중 및 지원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무분별한 지원은 의미가 없기에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꼭 필요한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울러 섬유산업이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와 자주 소통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전 교수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술로 ‘연계 기술’을 꼽았다. 이는 서로 다른 기술을 연결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기계에 전자항법을 더해 탄생한 내비게이션 등이 있다.

그는 “결국 틈새 기술을 확보하는 게 핵심인데, 이를 위해선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정부와 지자체”라며 “기업이 도전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을 불어넣고 지원해주는 것도 지자체의 역할이다. 즉, 지자체가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섬유산업이 발전할 수도,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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