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살아남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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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대표변호사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탓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거야’/ 그러자 난 내가 미워졌다.”

독일의 극작가 겸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그의 시(詩)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통해, 나치의 만행과 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 비극을 증언했다. 그는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덴마크와 체코, 모스크바, 미국 등 15년간 망명생활을 하며, ‘펜’을 무기로 반나치투쟁을 역설해왔다. 그럼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슬펐는지, 그는 ‘사상자 명부’라는 또 다른 시에서, 나치의 체포명령을 피해 망명했으나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벤야민을 비롯 먼저 떠난 동료들을 하나하나 애도했고, 이후 ‘오직 운이 좋았던 탓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한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한번이라도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겪어봤을 삶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단지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때론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를 비하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어린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을 향해 “그만 좀 우려먹어라”, 심지어 “죽은 자식들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식의 공감능력을 의심케 하는 막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46명의 군인들이 전사한 천안함 피격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민군합동조사단 및 미국·영국·스웨덴·호주 등 국제조사단의 조사 결과,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했음이 확인되었지만, 침몰원인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은 꺼질줄 몰랐다. 암초 내지 동맹국 잠수함과 충돌했다는 설부터, 금속피로로 배가 갈라져 침몰했다는 설까지 숱한 루머가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전파됐고, 어느 순간 최원일 전 함장을 비롯한 살아남은 장병들은 패잔병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세월호 유족과 천안함 생존자들 모두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혐오로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음에, 굳이 그들을 욕되게 하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누군가의 슬픔에 기대어 한몫 챙기려는 정치권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그 주역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슬픔마저 정략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세상, 우리 사회가 타인의 슬픔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이제 그만 그대들은 빠져 달라.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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