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두려운 주거취약계층
“언제쯤이면 비가 와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요”
본격적으로 장마철이 시작된 가운데 반지하 주택 등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이 힘겨운 ‘장마나기’를 하고 있다.
28일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사는 김명식 할아버지(89)는 장마를 대비해 집 앞에 물길을 만들고자 모래주머니 설치에 여념이 없었다. 김 할아버지 집은 비가 많이 오면 언덕 위쪽에서 빗물이 다량으로 흘러 내려와 침수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주 새벽 폭우가 쏟아질 당시 물이 새지 않을까 걱정이 돼 마음 편히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시흥시 신천동의 한 반지하 주택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 일대 반지하 주민들도 행여 막힌 배수로는 없는지 확인하느라 분주했고, 집 앞마다 설치된 모래주머니들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더욱이 이 동네는 지대가 낮아 높은 고도에서 물이 빠르게 모이는 지역으로 반지하 주택들의 침수가 잦은 곳. 이정훈씨(56·가명)는 “매년 장마철만 되면 침수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지낸다. 언제쯤이 돼야 비가 와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런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반지하 주택은 약 9만 가구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시군별로 따져보면 시흥(약 1만5천)·수원(약 1만4천)·성남(약 1만2천)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반지하 주택은 대개 건축된 지 20년이 넘은 노후 건축물이 많은데, 실내 오염에 취약하고 자연배수가 어려워 최저 기준 미달 주거시설로 분류된다. 더욱이 장마철이면 창문이나 대문 등으로 노면수가 유입돼 침수 우려마저 커진다.
기상청은 이번 주 내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장마전선이 큰 비를 뿌릴 것이라고 관측했는데, 이 때문에 각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성남시는 집중 호우 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들을 위주로 집중 관리하고 있으며, 시흥시는 지난 달부터 침수 이력이 있는 반지하 주택들을 직접 방문해 하수 역류 방지시설·하수시설 등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반지하 주택의 경우 매년 상습적으로 침수 피해를 입는 곳들이 있는데, 이런 주택들은 애초에 주거지로 사용돼선 안 되는 곳들”이라며 “침수 피해로 문제가 되는 주택들은 폐쇄 조처를 할 수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론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주택 공급지원 확대 등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 관계자는 “11개 이상의 시군에서 호우주의보가 발령되면 비상 1단계를 발령하는 등 호우 상황에 따라 모니터링 수준을 조절한다”며 “반지하 주택 등의 침수 상황은 각 시군에서 담당하지만 일선 지자체와 모니터링 협력 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정규·노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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