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 용문산 입구에 자리잡은 박물관...역사실 들어서면 양평의 과거와 현재 한눈에 친환경·화학농법 비교 먹거리 중요성 일깨워...1층 미지갤러리에선 ‘백년 씨앗 천년 틔움’전 토종 씨앗 지켜온 자랑스러운 얼굴과의 만남
자연과 인간의 상생, 착한 농법 생생체험
양평은 1973년 팔당댐이 준공되면서 수도권 시민의 식수원인 팔당호와 맞닿은 지역인 까닭에 여러 가지 규제를 받았다. 양평군은 대안으로 지역 전체를 환경농업지구로 설정하고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여 농가소득을 높이려고 노력해왔다. 이것이 2007년에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배경이다. 양평군은 다양한 공립박물관을 보유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친환경농업박물관을 비롯하여 양평곤충박물관, 양평군립미술관, 몽양기념관, 화서기념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세미원 연꽃박물관까지 모두 7개나 된다.
■ 생태와 환경,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
천년 고찰 용문산 입구에 있는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관장 진유범)은 외관이 한옥이다. 주변 자연환경과 어울리도록 설계한 모양이다. 양평군은 1996년에 이미 ‘양평향토민속관’ 건립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2006년에 이름을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으로 바꾸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박물관은 양평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양평역사실’과 양평의 친환경농업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친환경농업실’로 구성하게 된다.
1908년 양근군과 지평군을 합병하여 양평군이 되었다. 양평군의 상징은 수령 1200년 된 용문사 은행나무다. 2층 역사실에서도 용문사 은행나무와 마주한다. 거대한 은행나무 옆으로 난 길을 통해 양평의 역사로 들어가는 형식이 재미있다. 여기서 ‘용문산’을 노래한 옛 문인들의 한시(漢詩)를 만난다. 조선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인 택당 이식은 용문사를 이렇게 노래한다. ‘사흘 동안 산행에 지루한 줄 몰랐나니/푸른 절벽 붉은 나무들 들쭉날쭉한 길/용문사는 구름 자욱한 곳 어딘지 모르겠는데/ 골짜기엔 요란하기 빗줄기 쏟아지네’
역사실에 들어서기 전 작은 방에서 용문사 은행나무를 다시 만난다. 영상으로 은행나무의 사계를 보여주어 대자연의 위대함을 전달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양평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양평역사실’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양평 상여 회다지 소리’와 만난다. 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중에는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꽃가마’로 불렸던 상여도 있다. 양평의 고찰 사나사, 상원사, 용문사 같은 사찰의 전각과 불교 유적을 이미지와 영상물로 전달하는 공간도 있다. 이를 통해 과거 양평의 불교가 융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증국사 태고 보우가 양평을 대표하는 승려인데, 고려 말 보우가 국사로 추대되면서 양평이 군으로 승격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안내하던 김석원 학예사가 양평 의병투쟁의 역사를 소개한다. “양평은 우리나라 구국 항쟁의 본거지였습니다. ‘양평의 정신’은 바로 위정척사의 상징인 화서 이항로 선생과 면암 최익현 선생을 비롯한 ‘화서학파’ 인물들이 외세에 맞서 의병투쟁을 벌였던 데서 그 역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대를 격퇴한 양헌수 장군도 화서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분이죠. 1895년 전국 최초의 의병부대(을미의병)가 양평 출신인 이춘영과 김백선 등이 지휘한 ‘지평의진’입니다. 영국 기자 매켄지가 1907년 양평에서 촬영한 이 사진을 통해 당시에 일제와 맞서 싸운 양평 의병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실려 우리에게 익숙한 사진의 현장이 바로 양평이다! ‘의로운 고장 양평’의 전통은 항일무장투쟁으로, 광복 이후에는 양평 출신의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좌우합작운동과 통일정부수립운동으로 이어진다.
■ 양평, 친환경농업의 중심
수레바퀴처럼 생긴 기구가 있다. ‘용골차’는 장정들이 발판을 딛고 돌려서 낮은 곳의 물을 퍼 올리는 기구다. 친환경농업실에서 지게에 실린 ‘장군’도 만날 수 있다. 장군은 오줌이나 인분을 담는 통인데, 나무 사기 백자로 만든 장군도 전시되어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료 대신 사람과 소, 돼지의 오줌과 똥을 활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선의 농부들이 참고했던 수백 년 된 농사 서적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에 펴낸 농사 관련 서적들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를 통해 농사를 제일로 여겼던 우리 전통문화를 새삼 확인한다.
근현대에 농법이 크게 변화한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등장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친환경농업과 화학농법을 비교하여 안전한 먹거리,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농법의 중요성을 차분하게 알려준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생산량이 많이 늘어난다. 하지만 땅이 병들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인간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기질 원료를 이용하여 병원균 억제 미생물과 발효 미생물을 키워 농사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양평은 친환경농업의 중심에 있다. 왕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양평쌀을 비롯해 양평한우, 느타리버섯, 신선쌈채, 부추, 수박, 딸기, 참비름나물, 취나물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툇마루가 있는 초가집 마당에 콩이나 메밀을 가는 맷돌, 곡식을 담는 함지박, 곡식을 빻는 절구 같은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형으로 양평의 대표 친환경 농업 마을인 ‘용문면 화전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올해 12회를 맞이한 ‘양평 용문산 산나물 축제’는 조선 중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지’에 임금님 진상품으로 용문산 산나물이 최고라 기록을 바탕으로 기획된 축제다. 고사리, 고비, 취나물, 참나물은 “보약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물관도 양평 산나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양평 용문산 산나물 축제도 인기가 높았지요. 이때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미래를 열어갈 씨앗을 뿌리는 곳
1층 미지갤러리에서 열리는 기획전 ‘백년 씨앗 천년 틔움’전은 4월 21일부터 7월 3일까지 전시된다. ‘농부의 씨앗, 희망을 이야기하다’를 시작으로, ‘백년씨앗’ 구역과 ‘천년틔움’ 구역으로 구성됐다. ‘농부아사(農夫餓死
) 침궐종자(枕厥種子)’라니 외세에 맞서 싸웠던 양평 의병의 각오처럼 결연하다. “농부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봄에 뿌릴 씨앗을 먹지 않는다” 주먹이 들어갈 만큼 둥근 구멍이 난 박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 박은 소중한 씨앗을 보관하는 그릇이다. 기획전의 핵심은 토종 씨앗 중 총 234점의 공개다. 양평에서 수집된 토종 밭작물 씨앗 119점, 양평에서 수집 및 시험 재배된 토종 볍씨 115점이다. 박물관은 토종 씨앗의 가치를 다섯 가지로 소개한다. 하나, 기후변화에 적응한 씨앗. 둘, 깨끗하고 건강한 먹거리. 셋, 식량 안보를 지키는 생명줄. 넷, 새롭게 피어나는 맛. 다섯, 농업계의 반도체, K-토종 씨앗. 이처럼 토종 씨앗은 건강하고 맛있는 미래 먹거리이자 농업을 이끌어갈 소중한 존재다. 토종 씨앗을 지켜온 양평주민들의 자랑스러운 얼굴과 이름도 만날 수 있다.
■ 박물관, 배움과 소통의 마당
무엇보다도 반가운 사실은 박물관이 지역민들의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점이다. 박물관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의 모든 학생이 박물관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은자 운영실장은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에 특히 관심이 많다. “지난 4월 23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 양평문화단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어린이 양평문화단은 농업생활사 기획전시와 연계해 지역주민의 농업문화를 체험하는 활동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올해는 토종자원과 관련된 문화체험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요. 한 기수 당 30명씩 총 90명이 수강하는데, 1회차는 박물관에서 토종 씨앗을 주제로 다룬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를 관람하고, ‘24절기 달력 꾸미기’를 진행해요. 알면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24절기의 의미를 배웁니다. 2회차는 용문성당 안에 있는 ‘나자렛집 생태공동체 텃밭’을 방문해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고 토종 씨앗을 심어보는 체험이에요. 3회차는 토종 씨앗을 활용한 ‘씨앗 강정 만들기’ 체험입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지요. 참, 박물관 부설 ‘자연요리연구소’와 ‘다도체험장’의 활용도도 매우 높습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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