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시스템 밖에서 꿈을 좇는 아이들

image
홍형진 작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이 득점왕을 차지한 날. 꿈만 같은 쾌거에 ‘국뽕’이 차오른 나는 온종일 관련 영상과 뉴스를 끼고 살았다. 그러다 끝내 내가 사는 춘천에 있는 손흥민체육공원을 찾기에 이르렀다. 성지순례 비슷한 느낌으로. 참고로 춘천은 손흥민의 고향.

어라? 차를 몰고 공원에 들어서면서 어리둥절했다. 내가 아는 공원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커다란 사자상이 양옆에 서 있는 대문을 통해 들어서자 이내 드넓은 주차장이 펼쳐졌다. 한데 그게 전부. 공원임에도 휴게 공간은 보이지 않았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 역시 없었다. 심지어 주차장 외의 나머지 구역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게 무슨 공원이야?

의문은 금세 풀렸다. 알고 보니 이름만 공원일 뿐 실제로는 축구 학교였던 것이다. 손흥민이 170억 원을 들여 설립한 손축구아카데미가 바로 여기였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으며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 있다. 주위는 온통 숲. 애초 입지 자체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자연에 파묻혀 축구를 연마하기 좋은 곳.

대안 학교를 겸하고 있다기에 궁금증이 일어 검색해봤다. 커리큘럼이 특이하다. 축구 단체훈련은 오후에 두 시간만 진행되며 나머지는 선수가 자율적으로 연마하고 보완하는 구도. 일과의 상당 시간을 외국어 교육에 할애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해외에 진출하려면 외국어가 필수이고, 혹 축구 선수로 실패하더라도 외국어가 탁월하면 어떻게든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다는 계산. 거기에 독서, 인성 지도가 곁들여진다.

내가 10대일 때의 운동부 친구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수업엔 들어오지 않고 그들끼리 어울렸으며 폭력, 일탈 사건도 꽤 심했다. 운동 재능은 있지만 공부 못하고 가정형편 아쉬운 이들이 태반. 이렇게 표현하면 편견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힐난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나? 체육 선생님들은 아예 대놓고 그런 친구를 찾아다녔다. 운동부가 되는 순간 공부와 작별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그런 문화를 바꾸는 게 손축구아카데미의 취지란다. 자질 뛰어난 이를 선발한 다음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교육에 집중. 운동선수도 교양을 갖춰야 한다며 독서와 인성을 강조하고, 혹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해도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한다. 나름의 철학 아래 실속만 추구하는 셈이다. 물론 커리큘럼이 이렇기에 중고등학교 졸업장은 안 나온다. 검정고시를 희망하면 지원한다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을 모른 척하고 들어가 보니 드넓은 축구장이 펼쳐졌다. 마침 훈련이 한창이었다. 여느 유소년 축구교실처럼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호통이 오가는 엄격하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축구는 ‘그깟 공놀이’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인생을 내던진 것.

도박일까? 그런 속성이 없는 건 아니나 그리 표현하고 싶진 않다. 불완전한 체제에서 벗어나 나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전 정도로 해두자. 따지고 보면 손흥민도 한국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성장한 케이스다. 100% 순혈 한국인이지만 한국이 낳았다고 표현하기 애매한 이유. 그래서인지 그의 경기와 행보를 보면 이런 생각마저 든다.

‘쟤는 대체 왜 한국인인 건데?’

홍형진 작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