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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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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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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대게와 바닷가재 가격이 내린 적이 있다. 바닷가재는 로마 시대에 요리법이 있을 정도로 고급 음식 재료였다. 특히 다양한 요리법으로 현대 미식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다.

그러나 17세기 미국에서는 바닷가재는 너무 흔한 음식 재료였다. 바닷가에 끊임없이 떠밀려 내려오는 바닷가재는 빈민층이나 당시 유럽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주식이 됐다. 그리고 별다른 요리법이 없어 맹물에 바닷가재를 쪄서 먹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 몇 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먹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이민자들은 고향의 친지들에게 자기들은 매일 맛없는 바닷가재만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러한 바닷가재가 미국에서 고급 음식이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온 프랑스 요리사들과, 20세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바닷가재를 먹는 모습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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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재는 그림에도 등장했는데 낭만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외제 들라크루아(Eug〈00E8〉ne Delacroix)의 정물에 바닷가재가 등장한다.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은 들라크루아가 정물화를 많이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희소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화폭 중앙에 사냥물들인 새, 토끼, 도마뱀들이 날것 상태로 쌓인 그림인데 엉뚱하게도 조리된 바닷가재도 같이 뒤섞여 있다. 이 그림에 대한 주요 해석은 당대의 시대를 역행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들라크루아는 현대미술의 토대가 된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로 선과 규칙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미술과는 달리 낭만주의는 색채와 문학적 영감을 중시하는 장르다. 들라크루아는 당대의 퇴폐시인 보들레르, 시대를 앞서간 자유의 피아노 시인 쇼팽과 친분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의 생애도 열정에 가득 찼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와는 정반대다.

귀족 집안이었지만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누나의 손에서 자란 들라크루아는 평생을 작업에만 몰두한 화가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으며 작업하는 순간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한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사회의식도 발달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제작했는데, 프랑스 삼색기를 든 여인이 민중들을 이끌고 혁명을 이끄는 모습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류의 모습을 표현한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낭만주의는 사실상 혁명과 변혁의 장르다. 프랑스 혁명은 실패했지만 ‘자유, 정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에게 각인시킨 성공한 혁명이다. 낭만주의는 현실에서 찾지 못한 이상향을 과거의 신화나 이국의 유토피아에서 현실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러한 매개체가 바로 예술이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예술에서라도 이루고자 했던 낭만주의의 이상과 한계를, 풍경화와 정물화가 뒤섞인, 날것들과 조리된 것이 뒤섞인 혼돈의 상황을 표현한 <바닷가재가 있는 정물(1827~27)>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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