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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과 메멘토 모리
오피니언 아침을 열면서

[아침을 열면서]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과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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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운 소설가

아침 뉴스를 보다가 문득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Cus, 1904~1989)의 작품「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 ce of Memory)」이 생각났다. 중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달리의 대표 작품이다. 카탈루냐의 햇볕이 뜨겁게 이글거리던 날 바르셀로나에서 열차를 타고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미술관을 찾아가던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지나간 기억을 끌고 와서 흐르는 시간을 변형하려는 사람들, 이 남의 기억을 따라 하면서 거기에 자기 푯대를 세우려는 사람들, ‘망량문영(罔兩問景)’ 고사처럼 그림자의 그림자를 좇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무의식의 가상공간에서 자기 세상을 만들려는,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 「기억의 지속」을 보는 듯하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는 「기억의 지속」은 달리가 28살이던 1931년에 그린 크기가 33×24cm인 소품이다. 여명인지 일몰인지 모를 애매한 시각이 수평선에 걸린 사막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는 모두 4개의 시계가 등장한다. 그중 하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호박(琥珀)처럼 생긴 시계다. 시계 자판에 개미들이 득시글거리기는 하나 그나마도 이 시계만 제대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나머지 3개는 곧 흘러내릴 듯이 흐물거리며 축 늘어졌다. 그중 하나는 죽은 나뭇가지에, 하나는 테이블 모서리에, 나머지 하나는 사막에 내동댕이쳐진 살점 덩이처럼 이상하게 변형된 사람의 얼굴 위에 걸쳐져 있다. 이 그림들은 무의식의 공간에 흩어져 있는 각각의 기억들이다. 시계(인간의 삶, 또는 기억)가 녹아 늘어지든 멀쩡하든 시간은 계속 흐르며, 흐르는 이 시간 위에 영원한 건 없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죽음이다. 개미 떼가 오글거리는 호박처럼 생긴 시계에서 그 극명함을 본다. 호박은 보석이다. 보석 같은 삶에도 개미가 득시글거린다. 어릴 때 본 벌레와 박쥐의 사체에 달려들던 개미 떼의 기억을 달리가 여기에 옮겨놓은 것이다. 테이블에 걸쳐져 흘러내리는 시계 위에도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는 듯 외로이 서 있는 메마른 나뭇가지에 빨래처럼 걸린 시계, 이상하게 변형된 얼굴에서 녹아내리는 시계, 이 모두 흐르는 시간 위에 옮겨놓은 기억들이다. 이 변형된 얼굴에는 입이 아닌 코에 혀가 달렸다. 맛난 냄새를 맡던 코와 맛난 음식을 먹던 혀는 한통속이라는 뜻일까. 강렬한 속눈썹이 붙은 지그시 감은 눈은 무의식의 세계, 꿈꾸는 현상을 표현한다.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은 자기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잘난 사람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 앞에 겸손하라’ 외친다. 흐르는 시간 위에 영원한 건 없다.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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