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simulation)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 사건이나 과정을 시험적으로 재현하는 기법이다. 컴퓨터 게임의 한 장르로 시뮬레이션 게임이 익숙한 이들도 있고, 시뮬레이션에 좀더 복잡한 기술이 더해진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로 접하기도 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시뮬레이션이 개인이나 팀을 위한 교육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심정지와 같은 응급 상황에서의 처치를 학습하기 위해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실제 상황에서 숙련되지 않은 교육자에게 생명을 맡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병원이나 사고 현장에서 실제와 유사한 환경을 재현하면 참가자는 당황하거나 실수하면서 어떤 것을 놓치면 안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습득하게 된다. 예전에는 시뮬레이션을 위한 기술이 없는 반면 의료인 대비 환자는 너무 많아 몸으로 부딪치면서 익숙해졌고 그런 과정에서 숙련되지 않은 의료인 때문에 고통받은 이들이 있었다. 심장마사지, 기도삽관, 흉강삽입 등 침습적인 처치에 대해 실제와 유사한 상황을 구현할 수 있는 장비들이 많이 개발되고 프로그램도 다양화되어 새내기 의료인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시뮬레이션 교육의 최대 장점은 현실에서 하면 안되는 실수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면 처음엔 당황하고 긴장해서 아는 것도 빠뜨리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반복된 교육과 다른 참가자의 실수를 관찰하며 익숙해지게 된다. 이런 장점을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활용할 수는 없을까?
인생을 살아가며 가정이나 사회에서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면 당황하고 실수하기가 쉽다. 부부 사이의 작은 오해가 커져 가정이 깨지고, 친구에게 받은 상처로 소중한 생명을 마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들을 모두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할 수도 없고, 인간의 다양한 반응들을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를 본다면 머지 않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만남과 갈등을 겪으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선현들이 말씀하시는 인간다움이다. 하지만 건강검진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 사이에 생긴 갈등을 예방하고, 상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면 시뮬레이션을 통한 경험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5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정부의 정책들이 발표되고 있다. 힘있고 잘사는 일부가 아닌 힘들게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들을 펼쳐야 할 것이다.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정책을 정하고 추진함에 있어서도 충분한 시뮬레이션 연습과 훈련을 통해 실수를 최대한 줄여야 할 것이다.
이길재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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