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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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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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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시공(時空)은 삶의 제약이자 축복, 인간은 필멸의 나그네. ‘길’은 그래서 삶이 경유하거나 삶을 인도하는 도(道)의 비유로 활용된다. 지난 4월4일부터 17일까지 13박 14일 ‘제3회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서울 경복궁-안동 도산서원 276㎞)가 열렸다.

1546년 46세에 퇴계 이황선생은 고향 건지산 기슭에 양진암(養眞庵)을 지으며 은퇴를 결심했으나 이후 여러 사정으로 출사했고 사퇴를 반복했다. 1568년 음력 7월에 즉위 2년차 17세 선조가 소환하자 다시 상경해 경연에서 강의하며 음력 12월에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제진하고는, 왕과 대신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이듬해 1569년 음력 3월4일 마침내 은퇴 아닌 은퇴를 결행했다.

그 길의 마지막 두 구간을 따라 걸으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이 길이 ‘퇴(退)’의 의미를 성찰하는 길이지만, 왕에게 제시한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도 엄연히 종생토록 퇴계가 세상에 간절하게 제시한 길이고, 왕에게만 국한된 길도 아니며, 오늘 우리 모두 봉건의 고도(古道)로 외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무진육조소’는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으로 위미(危微)한 선악시비의 구별을 단행하고 정일하게 중용을 견지하며 그 역행(力行)으로 성세(盛世) 구현을 촉구한 논설이다. ‘성학십도’는 위민 정치의 대의를 구현하기 위한 천도 실현을 인륜과 덕업으로 해명하고 그 기본으로 심성 수양을 사단칠정과 이기를 설명하면서 ‘경’(敬)으로 그 일관된 추구를 권유한 도설이다. 시비와 의리, 공익의 그 전제에 아랑곳하지 않거나 당리당략의 고의성 왜곡까지 감행하며 아전인수를 거듭하는 근년 이래 이곳의 정치.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국민을 위한 대의에 충실해야 할 정치인들과 공직자는 당연히 되새겨야 하는 자산이고, 특정 진영에 자신을 고착시키며 자타를 훼손하는 팬덤에게도 역시, 아니 더 필요한 양식이다. 자기긍정을 확보하고 상대와 신뢰하며 통합다운 통합으로 나아가려면 아무래도 어떤 고양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퇴계가 은퇴하여 전일(專一)하게 가고 싶어 했던 그 길은 어떤 길이었나. 1565년에 지은 ‘도산십이곡’의 후육곡(後六曲) 기사(其四)편에 이미 정리돼 있었다. “당시에 녀던 길을 몇 해를 버려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사 돌아온고, 이제나 돌아오나니 딴 데 마음 말으리.” 즉, 일찍이 지향했으나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으며 근년 들어 또 방치한 가고 싶은 그 길은 우주와 인간의 진리, 그 궁극을 탐구하는 길이었다.

다른 편들에서 보이는 강호사물과의 물아일체 대등조응도 그 한 갈래이다. 오래 이어진 제자 육성은 그 자연스러운 한 결과였다. 우리는 퇴계가 아니며 시대와 환경도 아주 다르다. 그러나 퇴계의 그 탄식에서 우리는 문득, 자신에게 분노하며 삶의 진정성을 그리워하는 내면의 강렬한 비애를 느낄 수 있다. ‘유한한 삶의 시간, 이런저런 핑계로 시시하게 소모하지 말고,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자…’ 그리하여, 아 혹 그럴 수 있어, 퇴계가 임종 때까지 가꾼 매화에는 미치지 못해도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단 한번 피울 수 있다면, 우리의 짧고 비루한 삶을 구원하는 크나큰 영광이 되리. 도산서원(원장 김병일)이 주관해 퇴계의 옛 그 길을 최대한 복원한 ‘퇴계선생 귀향길’, 혼자도 좋고 친구들과도 좋고, 다시 걸어야 하리.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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