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아침을 열면서] 초록초록 새소리가
오피니언 아침을 열면서

[아침을 열면서] 초록초록 새소리가

image
정수자 시조시인

나날이 싱그러운 오월이다. 꽃 피고 잎 피고 매일매일 새 춤을 추는 나무들에 취한다. 자연의 순리라는 본성에 따라 본연의 소임을 다하는 나무며 풀들이 미쁘다. 어디선가 미사일이 터져도 우리 주변의 자연은 묵묵히 제 일을 펼쳐 가니 그 위안이 실로 크다.

어두운 뉴스 속에서 초록 아침을 맞으며 감사를 생각한다. 커튼을 여는 순간 한층 명명해진 초록에 눈 씻는 복이 새삼 귀하게 다가온다. 아직은 연두에 가까운 어린 새잎부터 먼저 나와 짙어진 초록 잎사귀까지 다함께 불러주는 오월의 노래다. 무슨 새소리를 초록초록 내는 것만 같아 귀마저 맑아진다. 며칠 전 공원에 옮겨 심은 나무들에게 부디 잘 견디라고 눈인사를 마구 보낸다. 집 안에 섬기고 있는 벵갈고무나무 새잎에도 살랑 입술을 건넨다. 그렇게 초록으로 눈과 귀와 마음을 헹구며 어깨 펴는 아침이 더없이 오붓하다.

그러고 보니 초록에는 육친 같은 느낌이 있다. 산 아래 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늘 두르고 살아온 산빛 때문일까. 시멘트 숲에 둘러싸였던 한때는 숨이 턱턱 막혔다. 방 하나라도 온전히 누리고자 독립했는데, 창을 열면 이웃의 시멘트벽이 눈앞을 가로막곤 했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집 앞의 초록 인사는 얼마나 큰 호강인지. 그때는 그랬다고, 30년 전만 해도 다세대 주택가는 녹지가 아주 적었다. 지금은 쌈지공원이나 도로 꽃밭을 곳곳에 만들며 도시 미관도 많이 갖췄지만.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으면 조경이니 도시 디자인에 신경 쓴다더니 세련된 외모 뽐내는 건물 사이에도 초록이 많이 늘었다.

그럼에도 더 많은 나무, 더 푸른 숲을 기대한다. 땡볕 아래 걷지 않도록 그늘 넓은 가로수가 고루 갖춰지길 고대한다. 나무그늘 좋은 길은 걷기 편하고 맑은 공기도 그만이지만 도시 경관을 수려하게 만든다. 매연과 간판과 요란한 불빛에 지친 눈의 피로 씻어주는 데도 변함없이 일등공신이다. 초록을 희망의 상징으로 삼아온 것도 그렇듯 오래된 자연의 힘에서 연유할 것이다. 되짚어보니, 신록 예찬이 창창했던 예전의 좋은 산문들 또한 덕성 많은 초록에 대한 겸허한 감사였다.

초록의 품을 받들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좋은 나무 한 그루 심어놓고 마지막 한 줌을 넣고 갈 수는 없을까. 수목장도 점점 어려워지는 판에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전혀 불가능한 바람일는지 톺아보는 것이다. 더 널리 초록초록 뿜어 펼치라고 비는 마음만 나무 밑에 담아두고 싶건만. 나의 나무 하나 지상에 심은 양 기대서는 오월 아침, 초록을 흠향하듯 깊이 마셔본다. 초록의 싱싱한 향이 걷는 사람들 발소리를 들어 올린다.

정수자 시조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