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6.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관'

1950년 7월5일, 그날의 ‘핏빛 전투’를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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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미령 전투가 진행된 6시간 15분의 상황을 전투 시뮬레이션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웅변하듯 세상은 평화를 바라지만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평화보다 더 소중한 것은 달리 찾을 수 없다. 유엔군 초전기념관과 스미스 평화관이 있는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오산 죽미령 전투를 기억하는 까닭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유엔의 결의에 따라 선발대로 파병된 미국 제24사단 소속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540명이 북한군과 6시간 15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이 첫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여 반격에 나설 수 있게 한 터닝포인트였다. 한국전쟁 때 벌어진 수많은 전투 중에서 죽미령 전투를 특별히 기억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2012년에 죽미령 전투의 중요성을 인식한 오산시(당시 시장 곽상욱)에서 미국에 흩어져 있던 참전 용사들을 찾아 나선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노병들을 찾아내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며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참전 용사들도 자신의 젊음을 바친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기념물을 기꺼이 기증한다. 이러한 노력과 정성으로 2013년 4월, 마침내 유엔군 초전기념관이 문을 연다. 오산시의 혜안과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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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평화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프로젝트 솔져 프로그램, 6.25 참전용사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윤원규기자

일본에서 평화유지군 역할을 하던 스미스 부대는 한시라도 빨리 한국 전선에 기동성 있게 투입하여 북한국의 남침을 조기에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대대급으로 꾸려졌다. 이 규모는 긴박한 상황에서 공중 및 해상 수송을 통해 가장 빨리 파견될 수 있는 미 지상군의 최대 규모였다. 1955년 7월 5일 죽미령에 건립된 유엔군 초전기념비는 이 전투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미합중국군대와 공산침략군 간의 최초의 전투를 개시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 1982년에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를 건립하는데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된다. 2013년 4월에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개관하고, 5월에 국가보훈처가 현충시설로 지정하며 8월에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공립박물관으로 등록한다. 2020년 7월 5일에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과 스미스 평화관을 개장하면서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죽미령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첫 전투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첨단 기술을 응용하여 실감 나게 구성한 전시실을 관람하고, 공원 주변에 설치한 기념물을 둘러보면 자연스럽게 ‘감사’와 ‘평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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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6.25전쟁 참전 용사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감사 메세지. 윤원규기자

■첫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다

초전기념관 고아라 국장의 안내로 평화공원부터 둘러본다. 차를 타고 밖에서 볼 때와 달리 공원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구성도 알차다. ‘워터커튼’이라는 이름의 철판으로 제작한 구조물 앞에 선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여기 영문으로 촘촘하게 새겨진 것은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540명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의 이름입니다. 전투가 벌어진 날에 비가 내렸다고 해요.” 전투가 벌어진 날 비가 내린 사실이 기념물에 반영될 정도로 전쟁의 기억은 참혹하다. 벽에 구멍을 뚫어 네 명의 군인이 걸어가고 있는 형상을 한 조각은 ‘거울연못’이다. “전장으로 향하는 용사들의 모습이 물에 그림자가 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시계처럼 보이는 둥근 조각의 중앙에 있는 꽃은 꽃말이 ‘감사’인 다알리아인데 참전 용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단다. ‘더글라스 C-54 조형케이트’는 스미스 부대가 한국으로 올 때 타고 온 수송기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다. 공원 가장 안쪽에 아주 중요한 기념물이 서 있다. 앞에 소개한 경기도 지정 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구 유엔군 초전기념비다. “스미스 부대원들을 상징하는 540개의 돌로 만들어진 것인데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1964년 기념비에 부착된 동판이 사라졌다고 해요. 고가의 청동을 누군가 떼어 간 것이죠. 그런데 1977년 미국 하와이의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한국인 지갑종 씨가 발견하고 입수합니다. 이 분이 기념관에 기증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죠.” 유엔 참전국 16개 나라의 국기를 단 평화놀이터는 편을 나누지 않고 모두가 어울려 노닐 수 있도록 넓은 부지에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화성과 수원을 바라볼 수 있는 죽미령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스미스 중령의 동상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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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초전기념관은 6·25 전쟁 당시 UN의 선발대로 파견된 미국 제24사단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가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인 오산 죽미령에 세워진 현충시설이자, 공립 박물관이다. 초전기념관 전경. 윤원규기자

■유엔군 초전 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다

2013년 4월에 개관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에는 150건 249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의 주제는 6·25전쟁의 발발 과정과 UN 평화유지군의 창설, 참전과정부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죽미령전투 진행과정을 소상히 알 수 있도록 사진과 영상, 문서 및 스미스 부대원들의 기증자료로 구성된 기록 보관소이다. 죽미령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려주는 영상물이 단박에 과거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6시간 15분의 죽미령 전투의 진행 상황을 실감 나게 전달한 영상을 보니 비로소 스미스 부대가 왜 이 지역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는지, 북한군의 진격 상황과 전투가 벌어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커다란 흑백사진 한 장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전투 사흘 전인 7월 2일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뒤에 있는 병사들의 얼굴까지 식별할 수 있으니 참 놀랍죠?” 엄숙한 추모의 공간이 이어진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그들을 기억합니다’라 새겨진 글귀 아래에 가득한 동판 하나에는 이름과 사진과 소속과 계급, 전사 여부를 알려주는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540명의 부대원 중에서 전사가 56명, 포로가 89명이 발생했으니 그날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된다. “기념관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참전 용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75밀리 무반동총, 2.36인치 로켓발사기, M1 소총, 4.2인치 박격포 같은 무기와 참전 당시 입었던 군복, 군화, 인식표, 철모, 대대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잊히지 않는 것은 개막식에 초대된 스미스 부대원들의 표정이 담긴 사진이다. 고령이라 대부분 휠체어를 탄 모습이지만, 감사를 잊지 않고 자신들을 초대해 준 한국인들의 태도에 감동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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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초전기념관은 6·25 전쟁 당시 UN의 선발대로 파견된 미국 제24사단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가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인 오산 죽미령에 세워진 현충시설이자, 공립 박물관이다. 초전기념관 전경. 윤원규기자

스미스 평화관에서 전쟁을 실감 나게 체험해 볼 수가 있다. C-54 더글라스(VR) 1950년 7월 1일 일본 후쿠오카에 소재한 이타즈케 공항을 출발하여 부산 수영 비행장으로 떠나는 과정을 1인칭 시점의 VR로 체험할 수 있다. 부산의 수영 비행장에서 대전역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스미스 부대원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동하며 아직은 평화로운 부산에서 대전간 열차 안에서 당시 우리나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스미스 부대가 7월 1일 아침, 이타즈케 공군기지를 떠나며 받은 임무는 ‘경부국도를 따라 북진하여 가능한 한 북쪽에서 적의 침공을 최대한 저지하라’는 것이었다. 한국 전선에 가장 먼저 파병된 스미스 부대는 ‘서부지역 지연 작전’에 최초로 투입된 부대로 기록되었다. LED 조명으로 빗발치는 총격 장면을 연출하여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체험 내용을 마무리 짓는 4면 영상이다. 이제는 90대가 된 스미스 부대원인 나. 나의 참전은 무엇을 남겼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죽미령에서 울려 퍼지는 평화의 메시지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죽미령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추모와 감사의 공간이며 전쟁 관련 소장품과 역사 연구를 통하여 선양사업을 추진하는 연구기관이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발전과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교육공간이며 다음 세대에게 희생의 의미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죽미령 평화공원을 찾아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되찾고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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