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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학문의 언어, 대중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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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학문의 언어, 대중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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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진 작가

드라마 제목 때문에 소셜미디어가 시끌벅적하다. ‘너에게 가는 속도 493㎞’라는 제목이 문제시됐다. ㎞는 거리의 단위이기에 속도를 의미하려면 시간을 더해줘야 한다는 게 골자. 맞는 말이다. 시속 493㎞, 493㎞/h 등으로 표기해야 정확하다. 한데 이게 오류 지적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문과가 또...’라며 비웃는 사람이 늘어가자 그를 불편해하는 분위기. 문과는 모르고 이과만 아는 내용은 아니라며.

여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한데 속도 대신 속력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적인 언어 관습을 무시한 주장이니까. 물리학 정의에 따르면 속도는 속력에 방향이 더해진 것이다. 우리가 속도라고 표현하는 대부분이 엄밀히 따지면 속력. 한데 이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고속도로에서 자기 혼자 반대 방향으로 100㎞/h로 달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물리학 정의대로면 이 또한 속도위반이다. 속력은 규정을 지켰어도 방향이 틀렸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이걸 속도위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역주행이라고 부른다.

학문의 언어를 대중 전반에 강요하는 게 온당할까? 경제학을 전공하며 비슷한 사례를 여럿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공공재다. 표준국어대사전의 공공재 항목엔 이런 예문이 있다. “에너지는 공공재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 올여름의 전기 부족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 이는 틀린 예문이다. 경제학에선 비경합성, 비배제성 둘을 충족해야 공공재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쓴다고 해서 저 사람이 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지 않고(비경합성), 누군가가 쓰는 걸 억지로 막을 수 없어야 한다(비배제성). 에너지는 둘 다 충족하지 않는다. 전기, 가스 등은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는 데다 요금 체납 시 얼마든지 끊어버릴 수 있으니까. 이를 두고 적지 않은 경제학 교수가 수업 시간에 열을 올린다. 대중은 무식하고 언론은 나태하다며.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은 ‘공중(公衆)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으로 간단히 정의하고 있고 일상에서도 그리 활용된다.

좀 넓게 확장하자면 음악의 불협화음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갈등이 심해서 화합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불협화음 심각하다’, ‘불협화음 마땅히 해소해야’처럼 표현하는 걸 종종 본다. 그러나 음악 전공자에겐 꽤 다른 온도로 읽힐지도 모른다. 불협화음 역시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고, 장르에 따라선 그걸 얼마나 영리하고 절묘하게 활용하느냐에서 실력이 판가름 나기에. 그런 음악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불협화음은 악(樂)의 일부일 뿐 악(惡)이 아니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모든 전공에 다 있기에 다들 할 말이 있을 테다. 한발 떨어져서 조망하면 자기 분야에서는 ‘그런 뜻 아니라고!’라며 으스대지만 남의 분야에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쓰는 형국. 그렇다면 조금 관대하거나 겸손해지는 게 어떨까 싶다. 틀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주고받되 특정 학문의 언어를 대중 전반에 강요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꼭 그러고 싶다면 대중과 동떨어져 누구도 헷갈리지 않을 언어로 대체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홍형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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