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이 기른 불세출의 화가, 단원 김홍도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는 한국인 누구나가 사랑하는 화가이다. 그렇다면 단원 김홍도를 가장 사랑하는 도시는 어디일까? 그렇다. 단원구가 있는 안산시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단원 김홍도가 안산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예닐곱 살의 김홍도가 안산에 30여 년을 살았던 표암 강세황(1713~1791)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사실이 <표암유고>에 실려 있다. 표암은 이렇게 증언한다. “단원은 어렸을 적부터 나의 집에 다녔다.”,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에 드나들었다.”
■안산, 단원 김홍도를 키운 도시
문화관광부는 1991년도에 안산시를 '단원의 도시'라 명명한다. 안산시는 단원의 도시이자 문화예술의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1999년부터 매년 10월이면 ‘단원미술제’를 열고 있다. 2013년 4월, 노적봉 기슭에 단원미술관을 개관한 이후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예술정신과 작품을 유산으로 지역 미술 활성화에 노력해 왔다. 2016년에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한 단원미술관은 지난 2022년 3월에 ‘김홍도미술관’으로 개명하였다. 안산문화재단(대표 김미화)은 단원미술관을 김홍도미술관으로 바꾼 까닭과 장래의 계획을 이렇게 밝힌다. “김홍도미술관은 안산시가 소유하고 있는 고미술 23점과 고 장성순, 고 성백주 화백의 기증품을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단원 김홍도에 관한 연구기능과 자료 저장 기능을 강화하려 한다. 지역 작가의 동시대 미술을 재조명하는 사업과 안산에서 활동했던 옛 예인들과 김홍도가 교류했던 우리 미술관이 위치한 노적봉에 대한 공간 브랜딩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들이 김홍도 관련 콘텐츠와 현대미술을 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전시기획을 통해 미술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단원을 김홍도로 바꾼 뜻은 다음 설명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소년 김홍도가 성포리 너머 서호를 바라보고 노적봉을 찾았던 안산의 예인들을 마주하면서 세상을 담기 시작했듯, 김홍도미술관은 소년 김홍도의 이러한 자세와 안산 시민들을 스승으로 세상을 담고 그리겠다.”
김홍도미술관 1관과 2관은 전시공간이고, 3관이 ‘단원콘텐츠관’이며 4관은 ‘상상미술공장’이다. 현재 ‘호랑이는 살아있다’(1관)와 ‘동서남북 호랑이 수호전’(2관)과 ‘단원과 표암’(3관)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단원콘텐츠관은 김홍도미술관이 소장한 단원의 그림을 전시하고 단원의 예술세계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정성을 기울인 공간이다. 첨단 기기를 설치하여 단원의 작품과 안산에 살았던 예인들의 작품을 화면으로 만날 수 있도록 꾸민 것이 돋보인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은 심사정, 최북, 허필 등과 교유관계를 이어가며 조선 후기 화단을 이끌었다. 안산은 성호 이익이 은거하며 안정복, 권철신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를 기른 학문의 고장이기도 하다.
■김홍도미술관에서 만나는 단원의 마음
김홍도의 그림은 웃음과 위안을 선사한다. 그가 남긴 그림은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풍경과 문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원의 그림이 당대는 물론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사랑을 받는 까닭이다. 단원콘텐츠관에서 귀한 그림 한 점을 만난다. “최근에 사들인 진본인데,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붙여두어 그림을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원 김홍도와 표암 강세황과의 사제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게 이어졌다. 강세황처럼 제자에 대한 글을 많이 남긴 스승은 세계 회화사에서도 찾기 어렵다. 강세황을 스승으로 만난 것은 김홍도에게 큰 복이었다. 김홍도는 국왕 정조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500년 조선역사에서 김홍도처럼 왕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화가도 달리 찾기 어렵다. 표암은 단원에게 삶의 여유와 해학까지 물려줬다. 2021년 안산시 소장 진본전 ‘표암과 단원’은 40년 세월을 스승과 제자, 동료이자 지기(知己)로 함께 하며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끈 두 예인을 조명한 것이다.
단원콘텐츠관에서 만나는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김상미 학예사가 그림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을 들려준다. “과거 시험장 풍경인데 시간적 배경은 새벽입니다. 과거 시험장이 ‘공원’이고, ‘춘효’는 봄날 새벽이란 뜻이지요. 전국에서 모여든 거자(擧子:수험생)들이 전날 과거장에 입장하여 우산 밑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과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입니다.” 성호 이익과 그의 제자들은 과거제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개선을 촉구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제도였기에 개혁 군주인 정조도 고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안산 학풍의 영향을 받은 김홍도는 이러한 내용을 풍속화에 아주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우산의 행렬을 서양의 원근법을 이용하여 표현한 것도 흥미롭지만 수험생과 그 일행들의 행동과 다양한 표정이 재미있다. 그림 상단을 보면 표암 강세황이 작품에 대한 화평을 적은 종이가 덧붙여 있다. 이런 형식의 김홍도 풍속화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도 있는데, 한 병풍에서 분리된 작품들로 보고 있다. 단원이 30대 초반에 제작한 ‘공원춘효도’는 정조시대 과거장 풍경을 담은 그림으로는 유일하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콘텐츠관에서 만난 문화예술교육사 정미영 선생은 단원 김홍도를 너무나 좋아하여 문화관광해설사까지 시작한 단원 예찬론자이다. 단원을 사랑하는 멋진 예술인과 만나 단원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안산에서 만난 호랑이
소나무 아래 눈에 불을 켠 듯한 커다란 호랑이를 기억하는가? 단원의 대표작인 ‘송호도’는 스승 표암 강세황과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스승은 소나무를 그리고 제자는 호랑이를 그렸다. 올해 2022년 임인년은 호랑이해다. 김홍도미술관에서도 지난 3월 25일부터 ‘2022년 전시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호랑이는 살아있다”전을 진행하고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이번 특별전의 의도를 들어본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인 ‘단군 신화’에 등
장하기도 하는 호랑이는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풍습과 문화, 정서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원의 대표작인 ‘송호도’를 떠올리시면 우리 미술관에 호랑이를 주제로 한 그림전이 단원과 잘 어울리는 주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5월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서 황종하, 김기창, 서정목, 유삼규, 오윤, 이은실, 이영주, 한주예슬, 제시카 세갈, 필립 워널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두루 만날 수 있다. 회화만이 아니라 영상과 설치미술까지 구성된 복합전시이다. 김기창, 오윤의 작품에 눈길이 쏠린다. 두 발로 서서 더덩실 춤을 추는 요절 작가 오윤의 호랑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운보 김기창의 부리부리한 호랑이가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웃음과 해학으로 고난을 이겨낸 한국인의 여유로운 품성 때문이 아닐까.
2관에서는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 김규리의 “동서남북 수호전”이 열리고 있다. 금요일 4시, 작가가 미술관을 찾아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를 관람객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사연부터 자신이 주목한 주제와 표현 기법까지 아주 자세하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림 못지않게 이야기 솜씨도 빼어나다. “2008년에 개봉한 ‘미인도’라는 영화 보셨어요? 제가 혜원 신윤복 역을 맡았는데, 대역이 있었지만 주연 배우로써 그림의 기초도 없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어요. 그래서 붓을 잡게 된 것이죠.” 혜원 신윤복은 단원과 쌍벽을 이루는 풍속화로 단원과 짝을 이루는 화원이 아닌가. 5월 8일까지 열리는 “동서남북 호랑이 수호전”에 등장하는 김규리의 호랑이는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매력을 내뿜는다.
김홍도미술관을 품고 있는 노적봉은 눈부신 꽃들과 연둣빛 새잎으로 축제를 벌이고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 표암과 단원의 나이는 무려 32세나 차이가 났지만 서로 지음(知音)이 되었다. 노적봉 산책로는 서로에게 기쁨과 보람이 되어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귐을 가슴으로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우정의 길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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