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 수원광교박물관

광교신도시에 자리 잡은 수원광교박물관은 매화꽃 향기가 가득하다. 세상은 뒤숭숭하지만, 시냇가로 난 산책로를 따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평화롭다.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젊은 여성들과 수령 400년이나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몸을 풀고 있는 머리 희끗희끗한 남성의 몸짓이 여유롭다. 자연의 멋을 살린 13만㎡의 광교역사공원 안에 자리 잡은 수원광교박물관에도 봄기운이 출렁인다. 앞으로 창룡대로가, 뒤로 영도고속도로가, 옆으로 광교로가 나 있으니 수원시민이라면 대부분 수원광교박물관을 한두 번쯤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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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광교박물관은 광교신도시 개발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 시기의 유물을 전시해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조주현기자

■추억과 희망이 공존하는 마을, 광교

광교신도시를 개발하던 경기도시공사가 2011년부터 사업비 178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085㎡ 규모의 박물관을 건립하고 수원시에 기부하여 개관한 것이 2014년이다. 수원광교박물관 1층에는 광교역사문화실을 비롯하여 어린이체험실, 다목적실이 있고, 2층은 기증유물관으로 소강실과 사운실이 배치됐으며, 지하 1층에는 수장고와 보존처리실이 있다.

광교역사문화실은 광교신도시의 옛과 오늘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 유물이 있다. 양반가의 안주인이 입었을 푸른 저고리에 붉은 치마 곧 ‘녹의홍상’이다. 국화문양이 정교하게 직조된 치마에서 양반사대부가의 격조가 느껴진다. 유중현 학예사에게 유물에 얽힌 사연을 청한다. “2008년에 영통구 이의동 현재 광교중학교 부근에 있던 안동김씨 선산에서 이장 작업을 하던 중에 의상이 출토되었는데 무려 32점이 수습되었습니다. 수원지역에서 복식유물이 처음으로 출토된 것이지요. 이처럼 광교신도시의 중심인 이의동은 안동 김씨라는 유력 가문이 500여 년 동안 살아온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박물관에서 자주 만나는 고문서나 도자기보다 화려한 의상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광교신도시는 영통구 이의동을 중심으로 하동과 용인시 상현동 일부가 속하는 광교산 남쪽 자락에 해당합니다. 이곳에 수원지역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여러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었지요.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옛사람들의 숨결과 정신이 담긴 정취 있는 마을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어릴 적 풍경은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추억 속의 광교와 나날이 변모해가는 신도시 광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한결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곳에도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야외의 고인돌과 함께 광교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선사시대의 유물부터 삼국과 고려와 조선의 유물을 살피다가 사연 많은 한 점의 유물과 마주친다. 태종대에 영의정을 지낸 세종대왕의 장인 심온(1375~1418) 선생의 묘 앞에서 세웠던 표지석이다. 상왕 태종은 외척들이 아들 세종의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사돈인 심온을 제건햇던 것이다. 세종시대의 안정과 찬란한 업적은 아버지 태종의 무자비한 숙청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나라의 안정을 위해 희생된 심온은 문종대에 복권되었는데 묘표를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썼다. 명필로 명성을 떨친 안평대군은 둘째 형 수양대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왕좌는 동기조차 죽일 만큼 비정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유물 하나에도 이렇듯 사연이 많다.

매장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의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한 작은 공간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광교에서 발굴한 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의동 주민들이 사용했던 지게와 절구 같은 생활 도구를 통해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 광교가 한적한 농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상으로 광교의 여러 마을에서 이루어지던 풍속과 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광교신도시의 중심인 이의동 역시 보리밭과 고추밭이 펼쳐졌던 시골 동네였다. 1980년대만 해도 초상이 나면 꽃상여를 멨을 정도였고 1990년대까지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길마재와 독바위 사람들이 음력 1월 16일에 모여 벌인 줄다리기의 형식이 흥미롭다. 어른 남자는 동쪽 줄(숫줄), 여자와 총각, 어린아이는 서쪽 줄(암줄)을 맡았는데 항상 서쪽 편이 이기도록 약속되었다.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들고 재앙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유월이면 이의동에는 황금빛 보리가 출렁이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졌다니 놀랍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던 시대를 보여주는 근현대유물이 더욱 궁금할 것이다. 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인 사운실(410㎡)에는 사운 이종학(1927~2002) 선생이 기증한 유물 2만여 점이, 소강실(681㎡)에는 소강 민관식(1918∼2006) 선생의 기증한 유물 3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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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삼국접양지도‘를 관람하고 있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해당 지도는 일본을 중심으로 주변 3국의 색채를 달리한다. 조선과 일본 사이 바다 한가운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칠해져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

토임을 명확히 밝히는 유물이다. /수원 출신의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 선생과 학창시절을 수원에서 보내 우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소강 민관식 선생의 기증유물을 전시해 보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조주현기자

■뜨거운 열정으로 채운 소중한 역사

역사문화에 관한 사료수집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수원 출신의 서지학자 사운(史芸) 이종학(1927~2002) 선생 유가족이 기증한 자료는 무척 다양하다. 일제 침략사 자료, 충무공 이순신과 독도 관련 자료, 고지도 등 2만여 점이나 된다. 잠시 의자에 앉아 이종학 선생이 일본도서관에서 극비 문서를 발견하고 이를 입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관람한다. 짧지만 감동적이다. 1920년대에 발행된 수원 화홍문을 담은 천연색 엽서에도 사연이 담겨 있다. 그는 엽서 소장자에게 “인천사람이 왜 수원 사진엽서를 가지고 있소? 수원 건 수원으로 돌려야지.” 이처럼 화홍문 엽서는 인천의 사진엽서 6장을 주고 교환한 것이다. 선생이 수집한 독도, 충무공 이순신, 간도, 동학혁명, 일제침략사, 화성(華城) 등에 관한 사료는 국내 최고의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우리 박물관에는 7,000여 장의 엽서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풍경과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울 자료입니다. 엽서를 활용한 전시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소강실에는 소강(小崗) 민관식(1918∼2006) 선생의 기증유물 3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국회의원 출신으로 문체부장관과 대한체육회장을 지냈던 민관식 선생은 스포츠와 올림픽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을 수집한다. 소장품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한다.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가졌던 고 조오련 선수가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이 있다. 오륜기가 새겨진 성화봉이 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베르린올림픽에서 영광의 월계관을 쓴 고 손기정 옹이 임춘애 선수에게 넘겼던 최종 성화봉으로 까맣게 그을린 흔적이 뚜렷하다. 1991년 남북한 탁구단일팀을 구성해 최강 중국을 꺾고 세계를 재패한 선수들이 친필 사인한 탁구 라켓을 보면서 남북이 하나가 되어 펼친 감동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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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실에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온 국민을 열정으로 뭉치게 했던 1988년 제 24회 서울올림픽 성화봉을 포함한 스포츠 관련 자료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1988년 제 24회 서울올림픽 성화봉. /발굴 현장을 재현한 디오라마. 조주현기자

■배움과 놀이, 성찰의 공간

수원광교박물관은 그동안 ‘나도 고고학자’, ‘독도에서 놀자’, ‘올림픽 스튜디오’, ‘어린이공방’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여 수원과 경기도를 대표하는 교육과 체험 및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에는 울릉군 독도박물관과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공동특별전시회를 열었다. 유물과 기록을 통해 우리의 국토인 독도를 새롭게 기억하도록 도운 특별한 전시였다. 특별전시 ‘광교, 시간을 말하다’는 사진으로 신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광교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하여 호평을 받았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10권의 책보다 더 많은 사실을 전해준다.

박물관 옆에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했던 당산의 400년 된 느티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곁에 있는 심온 선생의 사당과 묘소, 조광조 선생의 묘소와 심곡서원까지 답사하기를 추천한다. 광교역사공원을 산책하며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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