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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아침] ‘새로운 시대’ 구르는 굴렁쇠를 기다리며
오피니언 인천의 아침

[인천의 아침] ‘새로운 시대’ 구르는 굴렁쇠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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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올림픽, 수만 관중이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운동장 끝에서 한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했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축제에 첨단 무대기법을 마다하고, 달랑 굴렁쇠만 굴리는 7살 소년이 정적을 깼다. 기획했던 고 이어령 장관의 회상에 따르면, 어린 시절 햇살이 내리쬐는 보리밭 들판에서 어느 날 문득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다. 

죽음 뒤엔 무엇이 올까? 그는 우리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시작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태초 근원으로 돌아가는 느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직면하며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그는 굴렁쇠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당시 TV 화면 앞의 인류는 순간 모두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이고 생명임을 느꼈다.

파주 연천, 조각가 김창곤의 작업장엔 거석들이 기중기와 함께 있다. 별을 유난히 좋아하던 그는, 돌을 만지면 별을 만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릴 때 저녁 어스름 마을 밖에서 놀다 집에 돌아오면, 막둥이로 그를 낳은 늙은 엄마 품에 기대어 숨소리를 듣고서야 살아계심에 안도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한때 유성이었고 돌이었다.

인천 청학동에 가면 수령 540년의 느티나무가 동네 한가운데 있다. 공간에는 시간의 기운도 함께 배여 있어서, 거기엔 느티나무를 닮은 마을공동체 ‘마을과 이웃’도 있다. 이장격인 윤종만 대표에게 묻지 않아도, 느티나무 주변을 돌다 보면 공동체가 20년 이상 도시에서 유지되는 까닭을 알게 된다. 문학산 아래 땅과 세월의 기운이 여기저기 감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다세대주택들이 엉기성기 자리 잡았지만 그래도 느티나무가 아직 숨 쉴만한 공간으로 버티고 있고, 과도한 개발부담금 문제를 관과 함께 잘 해결했던 주민의 땀과 온기가 느티나무 마을 축제와 자녀들의 방과후학교로 온전히 남아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했다. 국경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행렬과 수도를 사수하는 국민의 저항이 눈물겹다. 3년째 코로나와의 고투는 우리가 근원적으로 하나의 생명임을 새삼 알려주고 있다. 마시는 공기가 얼마나 값진지 하루하루 느끼며 살고 있다.

대선이 끝났다. 확진자 사전투표 등에서 생긴 선관위의 위법을 밝히고, 향후 사전투표를 없애든지 외국처럼 사전선거인등록을 하든지 종이사전투표인명부를 작성하든지 방지책을 마련하고, 우선 지방선거에선 법대로 바코드와 투표관리관의 개인 도장을 꼭 쓰도록 해야겠다. 사람 사는 사회에선 늘 부딪힘이 있겠지만, 언제나 새로운 생명은 대지 위로 굴렁쇠를 굴리며 어김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흥우 해반문화사랑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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