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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악마의 술 ‘압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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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악마의 술 ‘압생트’

인상주의 미술은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현대미술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강렬한 색채를 통해 화면을 요동치게 만들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난해한 화풍 때문에 대중들이 거부감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에드거 드가(1834~1917)는 인상주의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그는 추상적인 방식보다는 사실주의를 선호했다.

드가의 그림 중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1876)>이라는 그림이 유명하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의 카페에 있는 두 남녀를 그린 작품이다. 화면에서 두 인물은 각각 앞을 보고 있고 그 앞에는 술병과 잔이 놓여져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어색함이 느껴진다. 마치 현재의 그림이 더 큰 그림의 일부분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잘라내기’ 기법으로 말없이 앞을 응시하는 두 남녀의 소외감과 고립감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이 그림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재와 인상주의 화풍이 절묘하게 맞아들어간 드가의 역작으로 평가받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은 당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까지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술인 압생트(Absinthe)라는 술이다.

압생트는 허브를 갈아 증류시킨 술로 도수가 40~80도가 넘는 독주인데 에메랄드 빛 녹색이 특징으로, 그 색깔 때문에 ‘녹색 요정’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이 별칭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압생트 술을 마시면 ‘헛것이 보이는’ 환각 체험을 하기 때문이었다,

압생트가 처음 나왔을 때는 가격이 비싸 부르주아들이 주로 마셨지만, 이후 가격이 하락하면서 1870년경에는 모든 계층이 마시는 ‘국민 술’이 됐다. 당시 파리는 산업혁명을 통해 겉으로는 풍요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그 풍요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의 개방적인 문화정책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보헤미안)이 파리로 몰려들었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고단한 삶을 잊기 위해 ‘녹색 요정’에 몸을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 고흐가 압생트를 너무 많이 마셔 정신착란에 빠졌다는 주장이 있는 것처럼, 압생트는 독성 때문에 20세기 초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것은 중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불순물을 섞어 제조한 일부 불량 압생트 업자들 때문이었다.

19세기 말의 세기말적 불안은 당시 전 유럽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불안과 공포는 역으로 현대미술의 촉매제가 됐지만, 고단한 현실에 몸과 마음이 지친 예술가들은 악마의 술 압생트가 들려주는 달콤한 노래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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