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건설현장 여성 노동자,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렵다

건설현장 여성 노동자가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

올해로 5년째 건설현장을 오가며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 임정숙씨(43·가명). 14일 임씨와 함께 찾은 화성시 영천동의 한 건설현장에는 허름한 1인용 가설 화장실 2동이 놓여 있었다. 각각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비된 것이지만, 현장 노동자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탓에 여성 노동자는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더구나 내부에선 악취와 함께 더러운 오물이 나뒹굴었다.

임씨는 “화장실에 갈 테니 시간을 재보라”며 발걸음을 뗐다. 그와 향한 곳은 도보 7분 거리에 위치한 상가건물로, 500m 이상 걸어야 모습을 드러냈다. 임씨는 “화장실은 엉망이고 세면대조차 없는데 그마저도 남자들이 문을 벌컥벌컥 열어대니 불안해서 사용할 수가 없다”며 “하는 수 없이 근처 개방화장실을 오가고 있지만, 한 번 다녀올 때마다 15분은 족히 걸려 소장 눈치를 보다 참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털어놨다.

 

하다 못해 화장실까지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외쳐야 하는 게

대한민국의 노동 현장입니다

건설현장에서 기본적인 화장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여성 노동자가 불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공사예정금액 1억원 이상의 현장에는 반드시 화장실을 설치해야 하며, 이때 남녀를 구분하고 소화기를 비롯한 안전시설도 갖추도록 돼 있다. 또 작업장과의 거리는 300m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여성 노동자가 상대적 소수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권리마저 무시받는 상황. 이런 문제는 지난 3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여성 노동자 160명(경기 8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현장에 화장실이 있다고 응답한 건 147명이었지만, 이 가운데 73명은 ‘화장실 수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화장실이 아예 없다는 답변은 13명(8.1%),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손 씻을 곳조차 없다는 응답은 34명(23.1%)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불편함으로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최근 1년간 방광염 진단을 받은 노동자는 55명(34.4%)에 달했다. 건설노조는 설문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장의 규모나 상시 근로인원 등 조건에 따라 차등적으로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기준이 따로 없는 상황”이라며 “우선 건설현장 내 샤워실, 화장실 등 편의시설 설치 가이드라인을 배포했고 추가적으로 관련 지침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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