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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잘 익은 벼는 고개 숙인다
오피니언 아침을 열면서

[아침을 열면서] 잘 익은 벼는 고개 숙인다

<역경(易經)>에 ‘亢龍有悔(항룡유회) 盈不可久(영불가구)’라는 말이 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더 올라갈 수 없으니 내려올 수밖에 없고, 무엇이든 꽉 채우면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계영배(戒盈盃)는 술을 70% 정도만 담을 수 있도록 만든 잔이다. 채우고 넘치도록 술을 따르면 그 잔을 든 사람이 쓰러진다.

비석(碑石)에 기록하는 비문(碑文)은 음각(陰刻)으로 새긴다. 비석 자체를 글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돌이 글자를 품었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글자는 모두 그 돌 안으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비석의 몸인 돌 전체가 글자가 된 셈이다. 그래야 비석에 새긴 글자가 오래 살아남는다. 비석을 만들 때 돌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진 비바람을 맞는 건 글자가 아니라 글자를 품고 있는 돌이다. 비석 몸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 한 비문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만약 비석의 글자를 도드라지게 양각(陽刻)으로 하면 글자가 비바람을 먼저 맞게 돼 돌보다 글자가 더 일찍 사라진다.

지도자의 탄생 과정도 이와 같다. 도드라진 재주가 키운 힘으로 대중(大衆)을 끌어들인 지도자, 즉 재주가 많음을 앞세워 스스로 자신을 지도자로 만들면 쉬 부서진다. 올바른 지도자는 대중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대중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도드라져서 떠오르는 게 아니라 대중이 품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면 대중이 크고 튼튼할수록 더 오래도록 남는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 대중은 앞서 언급한 비석의 돌과 같다. 양각이 아니라 음각을 하면 그 지도자는 대중이 존재하는 한 살아남을 수 있다. 대중의 품에 들어가는 건 도드라진 재주가 아니라 대중의 마음 여백에 넘치지 않게 담기는 겸손이다. 잔을 든 사람을 쓰러뜨리지 않는 계영배와 같은 술잔이 되는 일이다.

이게 어찌 지도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재주만 믿고 제 잘났다고 도드라지면 사람들로부터 쉬 잊힌다. 나의 잘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품게 만들어야 나의 존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내가 사람들을 이끄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나에게로 오게 하는 것, 여백(餘白)을 만드는 이 겸손이 올바른 존재가치를 만든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이 말은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라고 깨우쳐준 가르침이다.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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