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이슈&경제] 석유정점에 대한 단상
오피니언 이슈&경제

[이슈&경제] 석유정점에 대한 단상

최근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거듭하고 있다. 요즘은 시들해진 감이 있지만, 과거 유가가 급등할 때면 종종 등장하던 것으로 석유정점(peak oil)을 둘러싼 논쟁이 있다. 석유정점은 석유생산이 증가에서 감소로 전환하면서 최고치를 기록하는 시점을 가리킨다.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므로 언젠가 생산정점이 나타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석유정점이 언제 그리고 어떤 원인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둘러싸고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원 고갈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정점이 도래할 것이라는 (주로 지질학자들의)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발전으로 더 나은 에너지원이 등장하면서 수요가 감소해 정점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로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두 주장이 유가에 대해 갖는 함의는 정반대로, 전자의 주장이 맞다면 석유정점 부근에서의 유가는 급등세를 보일 것이고 후자의 주장이 맞다면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근래 들어 석유정점 논쟁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은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던 세계 금융위기를 전후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세자릿수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주로 전자의 관점에서 석유정점 임박론을 시사하는 많은 자료가 쏟아졌다. 심지어 2010년에는 국제에너지 기구(IEA)도 석유정점이 지난 것 같다는 내용을 담은 연례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IEA의 연구책임자는 저유가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단언을 하기도 했다. 여러 정황상 석유정점 임박론은 매우 설득력이 높아 보였고, 필자도 IEA 보고서와 여러 자료를 토대로 고유가 장기화를 전망하는 짧은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현실은 이 같은 전망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수평시추법이란 신기술 등장에 힘입어 셰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석유는 고갈이 아닌 생산과잉으로 치달았다. 필자의 설익은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다시 한번 장기유가 전망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되새겨야 했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 석유정점이 이미 지났거나 아니면 임박했을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다만, 최근의 고유가는 석유정점과 별 관련이 없다. 얼마 전에는 거대 석유기업 BP가 석유정점이 2019년에 지난 것 같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석유정점의 원인은 앞서 언급한 자원 고갈도 수요 감소도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수요 감소와 연관이 있지만,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같은 맥락의 수요 감소는 아니다. 이번 석유정점은 환경생태학적인 제약, 즉 기후변화 문제로 화석연료 탈피가 불가피하게 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석유정점 논쟁이 뜨겁던 10여년 전만 해도 이런 이유로 석유정점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번 석유정점은 확실할까? 일단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석유정점 논쟁에서 주목해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변화는 종종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온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 좀 더 많은 자리를 비워둘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 이런 것들이 석유정점 논쟁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싶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