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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승자의 역사를 만들기까지] “저 좀 봐 주세요” 시대·유행따라 달라진 표어
문화 G-Story

[선거, 승자의 역사를 만들기까지] “저 좀 봐 주세요” 시대·유행따라 달라진 표어

‘배고파 못 살겠다’서 ‘평등한 세상’까지
오늘날 민주선거에 이르기까지 수십년간
후보자마다 톡톡튀는 문구로 매력 어필

[승자의 역사를 만들기까지] 세월 따라, 유행 따라 달라지는 표어

동서고금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구전부터, 퇴적·풍화를 거쳐 기록된 문헌까지 다양한 역사가 사시사철 숨을 쉰다. 지금 경기도엔 어떤 이야기가 남고, 또 사라졌을까. 경기일보 이연우 기자와 민경찬 PD가 시나브로 잊히는 우리네 이야기를 찾아 글과 영상으로 전한다. G스토리팀의 세 번째 테마는 ‘선거’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들 한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면서, 국가의 주인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선거’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3월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와 6월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해다. 선거에 뛰어든 수많은 후보들이 공정하고 화합하는 아름다운 선거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선거에서 이 같은 ‘공명정대’가 주창된 건 아니다.

한때는 ‘배고파 못 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고 했던 시대가 있었고, 한때는 ‘민주세력 대연대 시켜 군부 정치 끝장내자’고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표어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평등한 세상, 준비된 사람’이 강조되고 있다.

오늘날 민주선거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후보자들은 자신의 매력을 어떤 문구로 어필해왔을까.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를 얻기 위해 그동안 선거전에는 어떤 표어들이 쓰였을까.

G스토리팀은 역대 대통령선거 및 경기지역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후보자선전물 중 공보·공약서를 뺀 벽보를 중심으로 선거판을 살펴봤다.

 

 

[G-Story] 선거편 ①시대별 이슈 담아낸 거울…표심 구애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 그랬다.

온 국민이 쫄쫄 굶던 시절엔 허기를 달래는 게 급선무였고, 부패한 독재가 장기간 벌어질 땐 파벌 정치를 몰아내는 게 우선시 됐다. 먹고 살만해진 순간부터는 나라의 안정이 필요하다더니, 이후엔 창조와 혁신을 바탕으로 튼튼한 경제 강국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 사이사이엔 ‘평화 통일’과 ‘변화를 이끄는 새사람’이 빠지지 않았다. 아무튼 최근 선거의 방점은 평등한 복지 실현과 누구나 행복한 삶에 찍혀 있다.

달라지는 시대상은 선거 벽보에 고스란히 담겨왔다.

■1~5대 선거까지 존재감 낮던 벽보, 6대 들어 ‘본격화’

먼저 대통령 선거 벽보부터 보자.

이승만(제1~3대)·윤보선(제4대) 시절을 거쳐 제3공화국(제5대)에 이르는 시절까지는 선전물 전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를 넘어 단독정부가 자리 잡던 시대, 부정·불법선거가 치러지던 시대, 5·16군사정변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대선에서 박정희가 정권을 잡던 시대를 모두 아우르는 기나긴 때의 이야기다. 이 시기(1960년대 초반까지)엔 선전물을 만들지 않아도 직선제와 간선제를 오가며 ‘어련히’ 대통령이 정해지곤 했기 때문에 벽보가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그나마 제2대 대선에서 이승만이 발췌개헌을 통해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면서 정·부통령 선거가 치러져 유일한 벽보가 생기긴 했다.

본격적으로 여러 후보들의 선거 벽보들이 붙기 시작한 건 제6대 대선이다. 대부분의 후보가 정장 차림에 무표정을 하고 근엄함을 앞세웠다. 지금과 달리 벽보 곳곳에 고문헌처럼 한자가 가득 적혀 있기도 했다.

당시 당선인은 ‘명랑한 생활과 편리한 살림을 위해 황소처럼 뛰겠다’고 내건 민주공화당 박정희다. 당 로고에도 황소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때에도 네거티브는 있었는지, 민중당 김준연은 ‘병든 황소 몰아내자’며 대놓고 박정희를 저격하고 나섰다. 어떠한 정책도,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벽보 속에 오로지 ‘황소’를 누르겠단 문구만 썼다.

 

■사라진 벽보, 12대부터 재등장…표정·포즈 다양화

그러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벽보가 다시 자취를 감췄다. 제9대까지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제10대 ‘갑작스레’ 대통령이 된 최규하, 뒤이어 제11대 전두환 때까지 벽보가 없었다.

한국 선거사에 벽보전(戰)이 벌어진 건 제12대 때부터다. 이때 벽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행해 모든 후보들이 같은 틀의 벽보를 내세웠다. 이 역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여파다. 개표 결과 ‘창조·개혁·발전의 새 영도자’ 민주정의당 전두환이 당선됐다.

벽보의 색깔과 글씨체가 화려해지고 후보자들의 표정·포즈가 다양해지기 시작한 건 제13대 때인데, 이 무렵 처음으로 여성 후보가 나오기도 했다.

사회민주당 홍숙자는 곱게 화장한 얼굴로 반지 등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내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는 오스트리아형 선진 민주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전했다. 무소속 백기완과 일체민주당 김선적, 통일민주당 김영삼은 모두 ‘군정 종식’을 외쳤다. 이들 모두 엄지를 치켜들고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민주정의당 노태우에게 밀려 패했다.

 

■남자처럼 꾸민 여자·26년째 대통령 도전 중인 허경영도

제14대 선거에선 무소속 김옥선의 벽보가 독특하다. 여성이지만 짧은 헤어스타일과 진지한 표정, 남성용 재킷 등을 걸쳐 남장을 한 모습이다. 당시 사회 통념상 대통령직에 여성보단 남성이 유리하게 보였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는 처음으로 벽보에서 분홍색을 사용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통일국민당 정주영은 벽보 역사 중 처음으로 ‘경제 대통령’ 타이틀을 썼다. 이를 기점으로 다음 선거부터 여러 후보들이 ‘경제 대통령’을 들고 나온다.

다음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현(20대) 대선 후보이기도 한 공화당 허경영이 처음 등장한 것. 당시 허경영은 핵주권과 경제기적을 바탕으로 강력한 한국을 건설하자며 10대 혁명 공약을 제시했는데, 이를 실천하지 않을 시 국민으로부터 어떤 처벌도 받겠다고 서약했다. 올해로 26년째의 도전이다.

 

■그 유명한 ‘불심으로 대동단결’ 나온 뒤…비교적 무난한 벽보 부착

뒤이어 ‘불심으로 대동단결’한 제16대 대선이다. 호국당 김길수가 스님의 차림을 하고 나와 유명세를 탄 때로, 같은 선거에 나선 사회당 김영규의 벽보도 돋보였다. 그는 얼굴을 크게 확대하고 ‘돈 세상을 뒤엎어라’라는 카피를 내세워 마치 영화 포스터와 같은 벽보를 만들었다. 벽보에 개인 홈페이지 주소를 명시해 비로소 2000년대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났다.

제17대 대선에선 한나라당 이명박·민주당 이인제·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무소속 이회창 등 쟁쟁한 후보 사이에서 새시대참사랑연합 전관이 유독 튄다. 그는 백마9사단장 및 학생중앙군사학교(ROTC)장이었던 이력을 살려 녹슨 철모를 벽보 전면에 크게 배치했다. ‘나라를 지킨 철모’라면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해놨다.

역대 최다 여성 후보(4명, 박근혜·이정희·김소연·김순자)가 출마한 제18대 대선, 곰돌이 캐릭터로 친근함을 앞세운 새누리당 조원진이 나온 제19대 대선엔 딱히 인상 깊은 벽보가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공직선거법이 강화하면서 선거 광고의 규정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전국동시’ 첫 경기도지사 이인제, 30여년간 벽보만 10여개

지방선거는 어떨까.

광역·기초단체장 선거로 한정해 봤을 때 첫 번째 벽보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붙었다. 광역의원은 이보다 앞선 1991년부터 붙기 시작했다. 대선 벽보와 같이 누군가는 기호를, 누군가는 정당을, 누군가는 정책을 제마다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지방선거의 경우 대통령선거보다 선거 횟수가 많고 후보자가 많아 일부 벽보만 추려봤다.

먼저 ‘많아도 너무 많은’ 벽보의 주인공 이인제다. 이른바 ‘피닉제(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로 불리는 그는 1988년·1992년·2000년·2004년·2008년·2012년·2016년까지 총 7개의 국회의원 선거 벽보가 있다. 그뿐이랴. 1995년엔 광역단체장 선거 벽보, 1997년·2007년엔 대통령 선거 벽보도 붙였다.

어쨌든 이 중 1995년이 바로 경기도지사 자리다. 국회의원 재선과 낙선을 경험하던 이인제는 1995년 경기도지사로 선출됐다. ‘더이상 서울의 봉이 될 수 없다’던 민주당 장경우와 ‘경기도의 아들’이라는 자유민주연합 김문원 등을 눌렀다.

‘경기도를 위해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는 사람’(1998년·동시2회) 손학규도 ‘땀으로 경기도를 적신다’(2002년·동시3회)고 했을 때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새천년민주당 진념(동시3회)·민주당 박정일(2006년·동시4회) 등 여러 후보들이 ‘경제도지사’ 다섯 글자만을 내세우는 틈에서 유권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카피였다.

 

■출마자 다양한 광역의원 선거, 그만큼 벽보도 ‘신선’

광역의원 선거는 훨씬 볼거리가 많다.

수차례 진행된 여러 번의 선거 과정에서 아파트 현장 소장도 출마하고, 사업가도 출마하고, 수학 선생님은 물론 ‘정복되지 않는 여자’를 집필한 희곡작가 겸 연출가 등 내로라하는 이력의 소유자들이 뛰어든 만큼 벽보도 개성이 가득하다. 단 제1회 선거(1991년)의 경우 경기도의원직에 도전한 379명의 벽보가 모두 흑백 사진으로 제작돼 크게 튀는 부분이 없었다.

동시1회(1995년)부터 벽보는 컬러풀해지며 신선해지기 시작한다. 고양시 제1선거구 도의원에 도전했던 우리당 신관섭은 동시4회(2006년)에 출마하면서 ‘독일 월드컵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넣었고, 가평군 도의원에 도전했던 무소속 정주석은 프랑스 에펠탑을 능가하는 ‘자라타워’를 가평에 만들겠다는 포부를 넣었다. 이 같은 벽보들은 중앙선관위 선거정보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역사 속 인물 흉내부터 TV 속 연예인까지…“상징적 선거운동에 의미”

이와 함께 벽보를 통한 캐릭터 전쟁도 벌어졌다.

허준(민주국민당 최광·2000년 국회의원선거 부산 사하구갑), 명성황후(자유민주연합 곽민경·2004년 국회의원선거 서울 동대문구을), 추장(민주국민당 최성권·2000년 국회의원선거 고양 일산구을)은 물론 ‘반라’로 나선 남자들도 있다. 아울러 우리에게 친숙한 연예인들도 과거 정계에 진출하던 당시 벽보를 만들었다. 이 같은 모습은 유튜브 경기TV에 업로드된 G-스토리 관련 영상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김동률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과 공보계장은 “선거벽보는 우리나라 선거문화 초창기부터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상징적인 선거운동방법 중 하나다. 한 장의 종이가 가진 힘이 커 후보자들도 벽보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라며 “현재도 벽보의 중요성은 크다. 관련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벽보를 훼손하면 중대 범죄가 될 수 있는 만큼 깨끗한 선거를 위해 성숙한 시민의식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G-Story팀=이연우기자, 민경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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