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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자! 미래유산] ⑨의왕 ‘한국한센복지협회’, 경기도 마지막 남은 한센인 입원시설
문화 지키자! 미래유산

[지키자! 미래유산] ⑨의왕 ‘한국한센복지협회’, 경기도 마지막 남은 한센인 입원시설

▲ 의왕시 오산동 모락산 자락을 따라 형성된 성 라자로 마을 초입에 위치한 한국한센복지협회 전경.
▲ 의왕시 오전동 모락산 자락을 따라 형성된 성 라자로 마을 초입에 위치한 한국한센복지협회 전경.

여러분은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보시나요. 누군가는 미래유산으로 보고, 누군가는 흉물로 볼 테죠. 견해가 서로 다른 까닭에, 그동안 수많은 근대건축물이 보존이냐, 철거냐 기로에 서서 온갖 수난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개중에 문화재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 소실됐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을 앞으로 얼마나 더 허무하게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꼭 지켜야 할 미래유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1876(개항기)에서 1970년 사이에 지어진 경기도의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들을 발굴해 보존 대책을 찾아보려 합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길 바라며.  편집자주

나병 혹은 문둥병으로 불렸던 한센병’. 과거 사회적 편견으로 인권유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 질병이 언제부터인가 일반인들에게 점점 잊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한센병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곳이 있다. 의왕시 오전동에 위치한 사단법인 한국한센복지협회.

경기도에 유일하게 남은 한센인 입원시설을 갖춘 특수의료기관이라 환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곳인데, 이제는 50년 가까이 머물렀던 터에서 떠나야 할 위기에 처했다. <지키자! 미래유산> 아홉 번째는 한국한센복지협회에 얽힌 회환의 역사를 돌아본다.

 

일제강점기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가 모태

▲ 성 라자로 마을 초입(위). 병원과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한국한센복지협회 본관 정면(아래).
▲ 성 라자로 마을 초입(위). 병원과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한국한센복지협회 본관 정면(아래).

지난 17일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국한센복지협회를 찾았다. 이곳은 모락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성 라자로 마을의 초입에 있다. 정문에 들어서니 입원실이 바로 보였고 그 위에 병원과 협회 사무실로 사용되는 본관이 나왔다. 병원은 한센병의 주 진료과목인 피부과와 성형외과, 치과, 정형외과 진료가 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한센복지협회의 뿌리는 1928 4월에 설립된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朝鮮癩病根絶策硏究會)’. 본관 건물 2층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가 이곳의 모태임을 알리는 취지문이 붙어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1928년 나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 사회적 격리로 병균을 방지하고 민중 보건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런 시국에 조선총독부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나병 환자들에 대한 시설 확충에 난색을 표하자, 조선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구라사업(나병 환자를 돕는 활동) 단체가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다.

당시 조선의 나병 환자는 1만 명이 넘었으나, 이들을 치료하고 돌볼 수용 시설은 전국에 3~4곳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외국인 선교사 등이 설립한 시설까지 다 합해도 그 많은 환자를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가 발족했고, 앞장섰던 인물은 최흥종 목사다.

▲ 본관 건물 계단참에 붙어있는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 취지문
▲ 본관 건물 계단 벽면에 붙어있는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 취지문

취지문에 적힌 위원은 모두 38명이다. 명단을 들여다보면 윤치호, 안재홍, 송진우 등 당대의 각계 명망가가 상당수 눈에 띈다. 이들은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전국 한센병 환자를 격리할 대규모 수용소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순탄치 못했다. <사랑과 봉사로 이어 온 한국한센복지협회 60년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선교자들과 조선인들의 구라사업을 못마땅하게 여겨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의 모금운동을 방해하는 한편 1932 조선나예방협회를 조직해 소록도를 세계에서 가장 큰 한센 시설로 만들고 환자들을 강제 격리시켰다.

결국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해방 후 1948 9월 대한나예방협회로 계승되었다가, 1956 10월 대한나협회로 개칭했다. 이후 1976년 9월 현재의 부지에 재단법인 한국나병연구원을 설립하고, 1982 4월 한국나병연구원을 흡수·통합했다가 1984 1월 대한나관리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오늘날의 한국한센복지협회 명칭은 2000 7월부터 사용했다. 나병을 한센병으로 고쳐 부르기로 한 해가 2000년이다.

 

성 라자로 마을에 기틀을 잡은 사연

▲ 일본선박진흥회와 일본 독지가들의 기부금으로 1976년 9월 한국한센복지협회 건물이 건립되었음을 기록한 동판.
▲ 일본선박진흥회와 일본 독지가들의 기부금으로 1976년 9월 한국한센복지협회 건물이 건립되었음을 기록한 동판.

숱한 변화를 겪은 한국한센복지협회가 현재 위치에 기틀을 잡은 건 나환자의 대부로 불렸던 이경재 신부 덕분이다. 이경재 신부는 1952년 한국 최초 천주교 나환자 복지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헌신적으로 한센인들의 터전을 마련한 사제다.

그는 1975 4 12일 보건사회부에서 성 라자로 내의 부지 11,484를 한국한센복지협회(당시 대한나협회) 50년간 무상 임대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센인 복지에 큰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건물은 일본선박진흥회의 도움으로 세워졌다. 본관 입구 동판에는 그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본 연구원은 우리나라 나사업을 돕기 위하여 일본선박진흥회가 정부에 기증한 기금으로 건립되었으며, 일부 의료 시설은 일본국내 다수 독지가의 기금으로 설치된 것임. 1976 9

▲ 1976년 9월 24일 한국한센복지협회(당시 한국나병연구원) 준공식. 사진제공 한국한센복지협회.
▲ 1976년 9월 24일 한국한센복지협회(당시 명칭 한국나병연구원) 준공식. 사진제공=한국한센복지협회.
▲ 본관 앞마당에는 협회 준공식날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를 한 소나무와 일본재단 회장 사사카와 요헤이가 방문한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
▲ 본관 앞마당에는 협회 준공식날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를 한 소나무와 일본재단 회장 사사카와 요헤이가 방문한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

일본선박진흥회는 ‘일본재단’의 전신이다. 일본재단은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가 설립한 극우단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한국의 한센병 관련 지원에 상당히 힘을 쏟았는데, 한국한센복지협회 건립 비용으로만 1억 5천만 엔을 제공했다.

건물 기공은 1975 12 9일이며, 준공은 1976 9 24일이다. 준공식에는 당시 영애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해 기념식수를 했다. 이후 현 일본재단의 회장 사사카와 요헤이(笹川陽平, 사사카와 료이치 아들)가 방문해 이를 알리는 표지석이 협회 마당의 해당 나무 앞에 놓여 있다. 협회 직원에 따르면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진 기념비였으나, 90년대 후반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최근 석재로 바꿔놓은 것이라 한다.

 

한센인의 고통과 시련의 삶이 녹아있는 시설

▲ 1.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협회 본관과 병동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2. 정면에서 보면 긴 장방형 형태의 개별 건물처럼 보이는 본관 건물. 3. 모더니즘 건물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본관 후면. 4. 병동 정면. 5. 기다란 굴뚝이 있는 병동 우측면. 6. 굴뚝과 연결된 소각장.
▲ 1.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협회 본관과 병동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2. 정면에서 보면 긴 장방형 형태의 개별 건물처럼 보이는 본관 건물. 3. 모더니즘 건물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본관 후면. 4. 병동 정면. 5. 기다란 굴뚝이 있는 병동 우측면. 6. 굴뚝과 연결된 소각장.

협회는 2층 콘크리트 건물로 된 본관과 병동(입원실), 교육관, 기숙사, 연구실 등 총 4,104 규모의 시설을 갖췄다.

먼저 본관과 병동은 각각 입구 정면에서 보면 긴 장방형의 개별 건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본관과 형태의 병동이 북두칠성 모양처럼 이어져 있다. 창문은 수평으로 길게 배열돼 있고, 현관 포치(돌출된 입구)는 사각기둥이 지지하는 보편적인 구조다. 외벽은 새로 페인트칠해 깨끗해 보이지만 내벽 곳곳에 금이 가는 등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병동은 경기도에 유일하게 남은 한센인 입원 시설이다. 29개의 병상을 운영하고 있고, 지금은 평균연령 80세인 한센병 환자 7명이 입원해 있다. 나균 배양하는 연구시설도 함께 붙어있는데 건물 외관을 보면 기다란 굴뚝이 눈에 띈다. 굴뚝과 연결된 곳으로 가보면 소각장도 있다. 몇몇의 직원은 환자복을 태우는 용도라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과거 병동 내 난방 시설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 직원 기숙사로 사용한 평화개발기념관(위). 현관 옆에 붙어 있는 기념 동판(아래).
▲ 직원 기숙사로 사용한 평화개발기념관(위). 현관 옆에 붙어 있는 기념 동판(아래).

본관 뒤편으로 가면 평화개발기념관 이라는 현판이 붙은 건물이 있다. 연구원과 직원들이 생활하던 기숙사로 방 5개와 화장실 1개를 갖추고 있다. 현재는 이용자가 없는 빈 건물로 굳게 닫혀있다. 이 건물에도 기념 동판이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축사는 세계종교적평화부의 평화개발기근의 취지에 찬동하여 일본국 송록신도대화산(松綠神道大和山) 신도가 매월 18일을 평화예방일로 정하여 일식을 결하고 일욕을 물리쳐서 헌금한 것으로 건설된 것이다. 1978 9.”

위 내용을 보면 기숙사 건물은 협회 준공식 2년 후 송록신도대화산이라는 일본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따로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협회 건물들을 건립할 무렵 한국의 재정 여건 상 일본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 1. 교육관 정면. 2. 교육관 좌측 뒤편에는 부랑아 한센인을 강제 수용하던 지하실이 있다. 3. 지하실 입구. 4. 스산함이 느껴지는 지하실 계단. 5. 쇠문이 달린 2개의 방이 나란히 있는 지하실 복도. 6. 교도소 독방을 연상시키는 감금실.
▲ 1. 교육관 정면. 2. 교육관 좌측 뒤편에는 부랑아 한센인을 강제 수용하던 지하실이 있다. 3. 지하실 입구. 4. 스산함이 느껴지는 지하실 계단. 5. 쇠문이 달린 2개의 방이 나란히 있는 지하실 복도. 6. 교도소 독방을 연상시키는 감금실.

기숙사에서 좌측 아래로 내려가면 서고 및 한센병 교육 장소로 쓰이는 교육관이 나온다. 이 건물에서 주목할 점은 외부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은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교육관 입구에서 왼쪽 뒤편으로 돌아가면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스산한 느낌을 주는 계단을 내려가면 쇠문이 달린 방 2개가 나란히 있다. 쇠창살이 둘러쳐져 있는 창과 변기를 갖추고 있는 공간은 마치 교도소의 독방을 연상시킨다.

김영선 한국한센복지협회 전략기획부 팀장은 부랑아 한센인이나 문제 있는 한센인을 강제 수용하던 시설로 알고 있다 교도관도 실제로 근무를 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한센복지협회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시절 한국의 한센인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짐작게 해 준다.

 

2025년 무상임대 계약 만료에 부지 이전 위기

▲ 한국나병연구원 김도일 초대원장 흉상(좌)과 구라탑(우).
▲ 김도일 한국나병연구원 초대원장 흉상(좌)과 구라탑(우).

교육관과 기숙사 사이 정원에는 나병 퇴치와 예방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83년 건립한 구라탑(求癩塔)’과 김도일 한국나병연구원 초대원장의  흉상이 나란히 있다.

이렇듯 한국한센복지협회 모든 장소에는 한센인의 역사가 짙게 새겨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협회는 이곳을 떠나야 할 위기에 처했다. 오는 2025 4월이면 이경재 신부와 맺은 무상임대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부지 소유주인 천주교 수원교구는 1988년부터 2009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보건복지부를 통해 부지 반환을 요구해 왔다. 이에 협회 측은 이전을 하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1996년 국비 23억 원을 확보해 충북 청원군 소재 부지에 이전을 추진했으나 지역주민 반대로 무산돼 국비를 반납했고, 1998년에는 현 부지 인근 사유지를 매입해 건물 신축을 추진했으나 천주교 수원교구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2003년 법원 경매 물건으로 나온 광주시 소재 병원에 입찰을 시도했으나 보유 재원 부족으로 무산됐다.

한국한센복지협회 관계자는 소유주가 이미 오래전부터 부지에서 나가달라 공문을 보내며 압박하고 있지만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 현안에 대해 적합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협회에선 보건복지부와 긴밀하게 논의 중이다. 또 한센인의 복지·환경 개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와의 업무공조를 추진하고, 대책 마련을 위한 창구를 범정부적으로 넓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경기도에 마지막 남은 한센인 입원실을 갖춘 병동 현관.
▲ 경기도에 마지막 남은 한센인 입원실인 병동 현관 모습.

협회가 이전하게 되면 남은 건물들은 훼손될 것이 자명하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부지 반환 요청서에 성당을 새로 짓는 등 교세 확장에 따른 종교 용도로 활용하고자 이전이 필요함을 밝혔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한국한센복지협회 건물 대부분 기능 위주로 간결하게 지어지고, 모더니즘 양식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어 근대 건축물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센인의 역사가 배어 있는 공간이기에 보전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교수는 건축적 가치는 별개라 하더라도 일본의 지원을 받아 한센병 퇴치에 힘썼던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장소를 그대로 지워서는 안 된다. 뜻을 같이 할 신부님을 찾아보거나 보전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때 10만 명에 육박했던 국내 한센병 환자는 2021년 말 기준 8574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한국한센복지협회에 입원하는 환자도 2021년 기준 16명에서 7명으로 2배 이상 줄었다. 환자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한센병은 역사 속의 질병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한센인들의 치료를 돕고 사회 복귀를 도모하려는 노고가 서린 장소를 지킬 수 있도록 방도를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사진=황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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