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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명예와 영광 과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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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명예와 영광 과거 속으로

야구선수 이대호의 은퇴 투어가 논란이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는 그에게 모든 구장에서 축하받으며 작별을 고하는 이벤트를 허락하느냐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성적과 기여만 보면 만장일치로 찬성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데 ‘그에게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 목소리도 드세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승엽과 추신수는 “대호가 못하면 앞으로 누가 할 수 있겠나?”는 견해를 내놓았고, 이대호 본인은 “은퇴 투어는 고사하고 은퇴식도 안 하겠다. 대신 모든 구장을 돌며 팬 사인회를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찬반 여부를 떠나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업적을 기리고 유산을 후대에 전하는 데 유난히 소극적이라는. 지금까지 은퇴 투어를 가진 야구선수는 ‘국민타자’로 불릴 만큼 입지가 절대적이었던 이승엽 한 명밖에 없고, 명예의 전당은 부산시 기장군에 건립하기로 결정한 게 2014년이지만 돈 문제로 인해 아직 착공도 못했다. 축구의 경우는 2005년에 명예의 전당을 신설하며 차범근, 히딩크 등 일곱 명을 헌액자로 선정했으나 이후 업데이트는 없다.

미국은 반대다. 야구를 위시한 주요 스포츠는 물론이고 음악, 만화, 게임,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명예의 전당이 존재한다. 매년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헌액자, 수상작을 선정하며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과거의 영광과 추억을 현재로 적극 끌어들여 세대 간의 교점을 만드는 데 열심인 것이다. 이런 노력은 프랜차이즈를 좀 더 공고히 만들어 시장에 선순환을 야기한다. 헌액, 선정 과정은 매우 엄격하지만 소극적이거나 적대적이진 않다. 유산을 만드는 과업이라는 합의 아래 적극적으로 임하고 대중도 함께 즐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20여 년 전 어느 음악원에서 잠시 공부하던 시기의 일화가 떠오른다. 당시 기타를 가르치던 강사가 수업 시간에 아래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신은 기타를 지미 헨드릭스처럼 치는군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겠어요? 기분 째지겠지요? 그런 사람은 당장 한국 떠나서 미국으로 가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타를 ○○○처럼 치는군요!’ 같은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구닥다리잖아요.”

○○○은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기타리스트로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업적과 공헌이 대단한 인물임에도 수업 시간에 이런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오갔고 반박하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학생은 없었다. 모두 농담으로 여기며 웃어넘겼다. ‘외국 거장들한텐 어림없지’ 같은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한국 록을 듣는 사람도 있어?’ 하며 얕잡아보던 기류도 은근했다. 존경의 정서는 딱히 느끼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한국 사회의 압축판 같다. 과거의 영광과 공헌은 구닥다리, 퇴물로 치부되기 일쑤고 그 가치와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꼰대 소리를 듣는다. 물론 극복하고 떨쳐내야 할 것도 수두룩하지만 그 와중에 기리고 계승할 만한 무언가에는 함께 가치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엄격한 건 얼마든지 이해하나 소극적이거나 적대적인 분위기는 아쉽다.

홍형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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