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로즈 셀라비는 왜 재채기 하지 않지?(1921)>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이다. 마르셀 뒤샹이 누구인가? 전시장에 변기를 출품해 미술계를 경악시켰고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어 미술계를 모독한 인물이다. <셀라비…> 역시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새장 안을 각설탕 모양의 152개의 대리석 육면체들로 가득 채우고, 그 위에 의료용 체온계와 오징어뼈를 올려놓은 형태이다. ‘대중들에게 이해되는 작품을 거부한다’는 뒤샹의 선언처럼 이 작품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의하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묘한 작품’으로 1936년 파리의 초현실주의 미술 전시회에 출품돼, 파푸아 뉴기니의 주술 장식물과 푸앙카레 연구소의 수학이론 도해 사이에 전시되기도 했다.
뒤샹은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개념을 전파했는데,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을 뜻하는 것으로 수공예라는 핸드메이드와 반대되는 것이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통해 기존의 미술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시각예술 개념을 정립하고자 했다. 예술작품과 대량생산된 일상 용품의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선상에서 새로운 예술의 유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뒤샹의 레디메이드인 것이다.
<셀라비…> 역시 레디메이드 작품인데 무게에 대한 암시(대리석), 약속된 달콤함(가짜 각설탕), 저지된 비상(飛上, 오징어 뼈와 새장), 대리석 조각의 차가움을 의미하는 온도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뒤샹의 작품들처럼 이 작품도 수많은 해석과 논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제목의 셀라비는 뒤샹을 지칭한다.
뒤샹은 여장을 자주 했는데 사진작가 만 레이가 그 모습을 촬영한 뒤 뒤샹에게 보여줬고, 뒤샹은 그 인물에게 ‘로즈 셀라비’란 이름을 붙였다.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고 뒤샹 역시 그러한 사회적 흐름에 동참한 것이다. 뒤샹의 예술적 의도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편견, 그리고 그 편견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희를 통해 사회와 예술을 새롭게 환기 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무의미하고 또 한편으로 심오한 <셀라비…>에는 왜 설탕이 중심으로 등장한 것일까?
설탕은 사탕수수로 만들어지는데, 사탕수수가 처음 재배된 곳은 남태평양 뉴기니섬이지만 설탕을 처음으로 제조한 곳은 인도다. 인도에서 서쪽 이집트로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전파되면서 설탕은 꿀을 제치고 대표적인 감미료가 됐다. 중세시대 이슬람제국을 통해 서유럽에 전해진 설탕은 초기에는 향신료로 분류돼 비싼 값으로 팔렸다. 특히 종교개혁으로 수도원에서 재배하는 꿀의 양이 줄어들고 서유럽의 차문화가 발전하면서 설탕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서인도제도에서 사탕수수 재배가 시작되면서 서인도제도는 설탕의 공급지가 됐다. 그러나 설탕을 제조하는 과정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또 사탕수수재배는 농업이지만 수확 후 설탕을 제조하는 과정은 플라스틱이나 강철을 만드는 것처럼 분업화 조직화가 필요한 공업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제국들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중남미에서 설탕을 만들게 했다. 설탕의 달콤함은 꿀의 몇 배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노예들의 눈물,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달콤함이었다.
마르셀 뒤샹은 <셀라비…>에 대해 말했다. “이걸 보시죠. 이것은 레디메이드 새장인데, 이게 설탕이 아닌 대리석이기 때문에 잘 들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이 내가 이걸 만들었을 때 재미있다고 생각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설탕이 대리석으로 변한 레디메이드입니다. 일종의 신화적 효과이지요.”
설탕은 달콤하다. 우리가 설탕이라는 달콤함의 관습에 취해 있으면 대리석으로 변한 설탕을 이해할 수가 없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물질을 단순히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관점에서 물질을 고찰하고 또는 물질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예술이고 예술에서만 인간은 동물적 상태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래서 뒤샹의 설탕은 달콤하지 않고 차가운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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