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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샛길
오피니언 아침을 열면서

[아침을 열면서] 샛길

‘그냥 새버릴까’ 샛길을 보면 문득 만발하는 생각들이 있다. 그것도 매양 반복되는 출퇴근길에서라면 더더욱. 하지만 대개의 샛길은 바라보다 돌아서는 한숨의 사잇길이다. 위험할 수도 있는 샛길이 그토록 마음을 헤집는 것은 평소와 다른 길의 유혹 때문일 것이다.

샛길은 새고 싶은 마음만 아니라 빨리 가려는 욕망도 부추긴다. 샛길이 공원에도 많이 생기는 것을 보면 그런 심리가 더 보인다. 공원 안의 길은 기존의 보행 노선을 고려해 잘 배치했지만 어느새 질러가는 샛길이 난다. 그것도 길옆의 잔디밭으로 지름길이 홀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길은 본래부터 있었나 싶을 만큼 묵은 길맛이 제법 난다. 대부분 새로 난 길의 풋내를 풍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걸음의 흔적들이 매끈하게 다져진다. 본래의 길을 버젓이 놔두고 그 옆으로 오종종 생긴 자국들이 샛길로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누군가 걷기 시작하고 따라 걸은 흔적들. 처음엔 따라 걷기도 망설여진다. 공원 안의 샛길이 대부분 잔디밭에 나 있는 까닭이다. 샛길의 유혹 앞에서 선뜻 못 들어서는 것은 지엄한 명령의 기억도 작용한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어린 시절 곳곳에서 눈을 부라리던 경고의 팻말은 얼마나 오래 가는 것인지. 그에 대한 저항으로 일부러 밟은 발길도 더러 있었다. 겨울 보리밭처럼 밟아줘야 잔디에도 좋다나. 하지만 잔디가 남아 있는 길은 미안스러워 머뭇대게 마련이고, 초록이 다 진 겨울에야 편하게 걸을 수 있다. 특히 시멘트나 벽돌 길에 발바닥이 아플 즈음이면 푹신한 잔디밭의 유혹이 아주 크다. 추운 마룻방에서 따스한 안방을 그리듯 흘끔거리며 바라보다 에잇 잔디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공원에 점점 늘어나는 반려견 산책자들 또한 다른 마음을 불러낸다. 그들이 거의 다 잔디밭을 마음껏 걷고 뛰기 때문이다. 개들이 끄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마지못해 잔디밭을 걷는지는 모르지만, 개 없는 산책자들 입장에서는 묘한 느낌이 든다. 견권이 인권보다 앞이던가? 누구든 잔디밭을 왜 걷느냐고 따지면 개가 사람보다 먼저냐고 나름의 응대를 장착하고 잔디밭을 걸어본다. 개들은 저리 마구 다니는데 사람은 왜 견제하느냐 준비했는데, 잔디밭 산책은 아무에게도 시비 당하지 않는다. 그것도 겨울 산책일 뿐, 봄여름가을이면 잔디밭은커녕 잔디밭 속 샛길조차 잔디에게 미안해서라도 못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샛길에 때때로 끌렸다. 낯설고 색다른 호젓한 샛길. 인적 드문 산속이나 들판에서 희미한 샛길을 만나면 따라 가고 싶어 설렜다. 무슨 생의 샛길을 꿈꾸다 다 지나오니 마음만 먼저 들떠 걷는 게다. 비유를 떠나 길 자체만 봐도 번다한 큰길보다는 호젓한 샛길의 매력이 크다. 더 들어가 보고 싶은 묘한 끌림과 울림. 그런 속삭임에 샛길이 자꾸 생기나 보다.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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