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17.1%. 고령화사회(7% 이상)를 넘어 고령사회(14% 이상)로 진입한 한국은 곧 초고령사회(20% 이상)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노인 세대의 질병과 빈곤, 고독 등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노인들이 외면받고 있다. 경제활동이 어려운 노인 가구의 빈곤은 물론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소외가 대표적이다. 이는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다시 한 번 ‘방역 소외’라는 현상으로 노인들을 궁지로 몰아세우고 있다. 본보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는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사회적ㆍ정책적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 아직도 연탄 걱정, 노인들은 춥다
지난달 22일 오후 의정부시 고산동의 기지촌. 이른바 ‘뺏벌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과서 주한미군이 상주하며 번성했지만, 부대가 철수한 뒤로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가정은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가구들로,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들이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최동례 할머니(74) 역시 혼자 산 지 수년째였다.
연탄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마당에 기부는 줄어들고,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사의 손길마저 자취를 감추면서 노인들은 더욱 고달픈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최 할머니는 “아무리 아껴 쓰려 해도 하도 날이 추워져 하루에 연탄을 8장씩 사용하고 있다”며 “겨울이 오면 어디서 연탄을 구하나, 값이 자꾸 오르는데 어찌하나 걱정이 많다”고 털어놨다.
■ 추운 겨울, 몸 뉘일 집조차 없다
몰아치는 한파 속에 연탄 걱정보다 ‘집’에 대한 기초적인 간절함이 앞서는 곳도 있다. 다음날인 23일 오전 수백대의 차량이 내달리는 서해안고속도로 아래 광명시 소하동의 한 판자촌. 스티로폼과 슬레이트를 얼기설기 덧댄 지붕은 칼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안으로 들어서자 아궁이에 불을 떼느라 바쁜 노부부가 나타났다.
흔한 보일러조차 없어 따뜻한 물이 필요할 때마다 끓여서 써야 한다는 김한성 할아버지(73)와 이해주 할머니(68)는 좁은 방안에서 닳고 닳은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어떤 게 가장 필요하냐는 물음에 “고생만 시킨 아내가 하루라도 안락한 집에서 쉬었으면 한다”며 “그래도 하나만 꼽자면 연락이 끊긴 자녀들이 잘 살길 바라는 것뿐”이라고 읊조렸다.
■ ‘방역 소외’로 번진 ‘디지털 소외’
비교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심 속으로 들어와도 노인 소외는 계속된다. 이날 낮 점심시간을 맞은 수원시 권선구의 한 식당가. 대형마트부터 각종 음식점, 카페 등이 몰려든 이곳 번화가는 조성 당시부터 ‘유행’처럼 키오스크가 설치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사를 하러 나온 노인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도 주문에 한참 애를 먹어야 했다.
방역 패스는 노인들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QR코드 인증과 함께 카카오톡 메신저를 실행한 뒤 흔들거나, COOV 인증 시스템 등을 이용하면 손쉽게 백신 접종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지만, 노년층에게 휴대전화는 그저 ‘자식들의 안부전화를 받는’ 용도일 뿐이었다. 칼국숫집에 들어선 할머니 4명은 결국 옆자리 손님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 늘어나는 노년층, 사회적 관심 절실
지난해 11월 기준 경기도 인구는 1천355만7천973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87만3천752명(13.8%)으로 집계됐다. 특히 경기도에 거주하는 독거노인(65세 이상 1인가구)은 29만6천821가구로, 경기도 전체 508만8천431가구 중 5.8% 차지했다. 경기지역에서 10명 중 1명은 노인, 20가구 가운데 1가구는 홀로 사는 노인들인 셈이다.
아울러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년층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우울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이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65~69세는 8.4%, 70~74세 12.3%, 75~79세 15.6%, 80~84세 19.7%, 85세 이상 24.0%로 증가폭 또한 점차 커진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 같은 수치는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 “노인, 곧 취약계층… 적극적인 교육 필요”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판자촌 등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기 때문에 주거 취약문제를 노인 빈곤의 문제로 시야를 넓혀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인 원인은 이 노인들이 연금체제에서 배제돼 있다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축적해둔 연금 재원을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든 정보가 유통되는 통로가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이 됐다는 게 노인들이 당면한 문제”라며 “정부와 지자체는 디지털 문해력이 현격히 낮은 고령층을 위해 아날로그 방식의 접종증명서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층을 대상으로 발빠른 디지털 교육의 확대도 병행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 정부, ‘노인 소외’ 문제 개선책 검토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통상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를 겨울철 중점관리 대책기간으로 본다”며 “노인은 물론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선제적인 안전관리를 추진하고, 각 지자체별로 파악 중인 취약계층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재난도우미가 난방 여부, 건강 상태 등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백신 패스 도입과 QR코드 인증의 확대로 스마트폰 활용이 어려운 노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소외되는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인근 주민센터에서 종이로 된 접종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으며, 다른 개선책이 있을지도 계속 검토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희준ㆍ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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