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월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코로나19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매년 연말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번번이 무너져내렸다. 새해 첫날에도 무서우리만큼 확진자가 쏟아지는 가운데 누군가는 진단검사를 하느라, 누군가는 이송된 확진자들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해 첫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자 현장 곳곳에서 분투를 벌이는 그들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 코로나19 전담병원 “올해는 제발 마스크 벗을 수 있길”
“502호로 빨리 가봐, 환자가 넘어지려고 해.”
1일 오후 3시께 평택 더나은요양병원. 병상을 모니터링 중인 한 간호사가 다급하게 무전을 외쳤다. 급히 연락을 받은 의료진이 달려와 환자를 붙잡자 모니터를 지켜보던 간호사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숙연 간호조무사(48)는 “깜빡하면 사고가 난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병원을 책임지는 것은 30여명의 의료진이다. 의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들이 3교대로 37개 병실 80병상을 책임지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입원자가 대부분인 만큼 근무에 들어가면 식사, 기저귀 교환, 체위 변경 등으로 새해에도 변함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간호사실의 클로즈업된 화면에는 병상에서 숨진 입원자를 옮기는 의료진이 보였다. 3명이 달라붙었음에도 힘에 겨운 듯 비틀거리며 시신을 옮겨 눕혔다. 한 사람이 능숙하게 시신을 천으로 싸매 병실 밖으로 운구하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은 이불과 시트를 벗기고 고인의 물건을 신속히 폐기물 상자에 담았다. 불과 5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인을 옮긴 배소미 간호사(26)는 “가족들과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시기 때문에 고인 앞에서 좋은 곳에 가 편히 쉬시라고 조용히 명복을 빌어 드린다”며 “올해 5월에는 마스크를 벗는다는 예언이 있었는데 제발 그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기원했다.
이날 같은 시간 고양 일산병원에선 의료진 셋이 근무에 들어가기 위해 착의실에서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한 간호사는 키보다 큰 방호복을 몸에 맞추기 위해 바지 밑단을 한 뼘이나 접어 청테이프로 둘둘 동여맸다. 덧신을 신고 헤어캡과 마스크를 썼다.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고글과 후드 사이도 테이프로 꼼꼼하게 붙였다. 장갑 2장과 비닐 앞치마로 중무장을 마친 뒤에서야 그들은 병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 병원 준중증병동에서 고령 환자들을 돌보는 박규리 간호사(39)는 “최근 입원자가 늘어 업무가 가중된 상황에서 치매 환자들이 많아 낙상예방 통제가 쉽지 않지만 건강히 퇴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보람과 사명감으로 하루하루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퇴원하는 환자들이 격리 병실을 나오며, 마스크 쓴 의료진들을 향해 환하게 손을 흔들며 손하트를 날렸다. 그녀 역시 손하트로 그들의 인사에 응답하며 환히 웃었다.
중증병상에서 근무하는 이정모 교수는 “환자들이 중환자실을 나갈 때 가장 보람있다”며 “올해는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 보건소 “힘들지만 사명감으로 이겨나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1일 낮 12시17분께 안산 단원보건소. 점심을 먹으러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급히 식사를 마친 김선자 감염병대응팀장(41)과 손태우 주무관(45)이 4층으로 뛰어 올라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방호복을 입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확진자를 연천으로 이송하기 위해 점심을 먹자마자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하며 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가 구급차에 탑승했다.
이들이 10분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안산 초지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 차를 대자마자 차량을 운전한 손 주무관이 내렸고, 김 팀장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잠시 후 30대 남성이 양손에 생활용품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와 옷가지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확진자가 구급차에 탑승한 뒤 구급차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황급히 연천에 있는 생활치료센터로 출발했다.
이날 두 사람은 “벌써 2년째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지만 노력한 덕분에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분들이 제때에 치료를 마치고 건강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명감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병원 못지않게 일선 보건소도 바쁘다. 확진자 폭발로 업무량이 과부하된 탓이다. 2년 전과 달리 확진자는 십수배 증가했지만 근무 인력은 별반 차이가 없다.
직원 몇 명이 방역에 대한 모든 것을 안고 가다 보니 한계상황에 부딪힌다. 확진자뿐만 아니라 밀접 접촉자 등 관련자들까지도 연락해서 근황을 확인해야 하는 것까지 감안할 때, 실제로는 확진자 수의 10배가량 되는 사람들과 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날 오후 1시께 고양 덕양구보건소. 감염병대응팀 사무실에서 연신 전화하는 직원들은 격앙된 어조로 따지는 사람들에게 사정사정하며 울먹거리며 통화하고 있었다.
한 직원은 “역학조사 후 확진자 밀접 접촉자들에게 연락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됐다고 연락하면, 10명 중 3명 정도만 알겠다고 하면서 방침에 따른다”며 “나머지 7명 정도는 ‘당신이 뭔데’, ‘내 생계를 망칠 셈이냐’고 소리를 높이면서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토로했다.
민원전화도 폭주하고 있다. 병상 부족으로 재택치료 수요가 증가하면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이다. 이현숙 덕양보건소 의료지원팀장은 “자택 치료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답답해하면서 민원도 폭증하는 상황이지만 자택치료추진단 관련 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최대한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5시30분께 부천종합운동장 선별진료검사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지만 검사 대기줄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장사진을 이뤘다. 부설주차장 입구부터 대기 인원들이 가득했다.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들은 검사자의 코와 입에서 검체를 채취하자마자 비닐장갑을 벗고 새 장갑으로 바꿔 끼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페이스실드 사이로 비치는 직원들의 두 눈은 누적돼 피로로 빨갛게 핏발이 서 있었지마는 쉴 틈은 없었다.
이날 현장에서 이선숙 부천시보건소장은 “직원들이 지쳐서 휴직계나 사표를 낼 때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며 “이들에게 당장에 어떤 대책을 마련해줄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우리가 포기하면 끝이라는 각오로 다시금 마음을 붙잡는다”고 각오를 밝혔다.
보건소 관계자들이 고생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피폐해진 와중 들려오는 응원의 목소리에 힘을 내기도 한다. 허기순 일산동구보건소 감염병팀장은 “한 학교에 확진자 학생 수가 1~2명이었을 때는 충분한 역학조사 후 방역 조치를 취해도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지만 최근 몇 배로 급증하다 보니 조치가 늦어지고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아졌다”며 “신속하게 조치가 안 됐다 싶으면 항의 전화도 걸려오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 몇 마디에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고양ㆍ평택=김태훈ㆍ안노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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