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국적을 가진 부모의 자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의도치 않은 차별을 겪곤 한다. 단지 외모, 말투,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12월 경상북도 양산에서 발생한 몽골 국적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도 이런 차별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대면수업이 줄고 온라인 수업이 활성화하면서 앞서 언급한 종류의 차별은 크게 줄었다. 학생 간 접촉 기회가 줄면서 갈등 역시 줄어든 양상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향한 차별은 여전하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거부당하거나, 비자가 있어도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모두 외국 국적이거나 외모, 언어가 다르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지난 12월 15일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서는 ‘이주배경청소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이주배경청소년 4천78명을 대상으로 면접과 설문지 작성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조사에서 ‘일상생활에서 차별받은 경험이 있는지?’ 묻자 대부분의 학생이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 현황 파악조차 되지 않은 ‘이주배경청소년’
우리가 흔히 부르는 ‘다문화청소년’이라는 표현은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고, 국내 출생자이며 한국인인 청소년을 일컫는다. 다문화 청소년을 포함해 자신이 직접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이주한 경험이 있거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외국 출신인 가정의 자녀,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북한이탈주민인 가정의 자녀 중 9~24세에 해당하는 모든 청소년을 포함한 개념이 ‘이주배경청소년’이다. 지난 2010년 첫 제안이 나온 뒤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이주배경청소년의 범주에 들어가는 집단별 통계는 매년 집계되고 있으나 이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현재로서는 행정안전부의 외국인 주민 현황,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여성가족부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등 활용 가능한 통계자료를 통해 그 규모를 추산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매년 공표하는 교육기본통계는 눈여겨 볼만 하다. 연령별 현황 파악에는 한계가 있으나 다문화 학생을 ‘국제결혼가정의 국내 출생 자녀’ ‘국제결혼가정의 중도입국 자녀’ ‘외국인 가정의 자녀’로 구분해 통계를 내고 있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경기지역에는 총 4만667명의 다문화 학생이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출생은 2만5천897명, 중도입국은 3천97명이다. 부모 모두 외국인인 가정은 1만1천673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도내 다문화 학생의 비율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가 시작된 2012년(0.6%)을 시작으로 2013(0.8%), 2014(1.0%), 2015(1.2%), 2016(1.5%), 2017(1.7%), 2018(1.9%), 2019(2.2%), 2020(2.5%), 2021(2.7%)년까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차윤경 이사장은 “효과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문제 상황에 대한 현황 파악이므로, 이주배경청소년 실태조사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며 “향후 이주배경청소년 통계 구축 뿐만 아니라 지원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관련 부처 및 기관들의 지속적이고도 공고한 협조체제가 계속 유지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외모가…언어가…” 달라서 받아야했던 차별
‘이주배경청소년’이라는 단어로 순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외국인’ ‘혼혈’ 등으로 불리며 배척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모 차이가 드러날 경우 주목받거나 놀림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국어를 잘할 것이다’ ‘부모 국가의 문화를 잘 알 것이다’ 등의 고정관념도 이주배경청소년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이주배경청소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받은 차별’은 집단별, 성별, 연령별, 주관적 가정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탈북배경(80.4~91.8%) 및 국내 출생 국제결혼가정(88.4%)의 경우 차별 경험이 적었지만, 국외 출생 국제결혼가정자녀(27.1%) 및 국외 출생 외국인 가정 자녀(27.4%)의 차별 경험은 다른 집단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외모와 언어가 다르게 느껴질수록 이들에 대한 차별도 두드러졌다.
또 남자 청소년(15.9%)보다 여자 청소년(20.6%)의 차별 경험이 더 많다는 응답도 눈에 띈다. 연령별로는 19~24세의 차별 경험률이 30.6%로 가장 높았다. 주관적 가정 형편의 경우 ‘매우 어렵다’(31.0%) 및 ‘어려운 편’(27.6%)이라고 응답한 집단의 차별 경험이 높게 나타났다.
가해자는 대부분 학교, 학원, 공부방 등 이주배경청소년들이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차별적인 행위를 당해도 대부분은 그냥 참았다. 부모나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경우는 드물었다.
◆ 사회 곳곳에 만연한 차별들
이주배경청소년 가운데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 △외국에서 태어나 어느 정도 성장한 뒤 한국 입국 △이중국적자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중도입국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한국에서 예비학교와 같은 학력 인증 기관을 거쳐 새로운 학교로 진학한다. 문제는 많은 중도입국청소년이 입학을 거절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입학은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지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입학을 꺼리는 실정이다.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리면 사안은 더 복잡해진다. 가해자일 경우, 보호자에게 학교폭력위원회 개최 여부를 통지하지 않고 곧바로 처벌이 내려지기도 하고 반대로 피해자일 경우 가해자의 말만 듣고 부모에게 따로 알리지 않아 사과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위원회 측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들지만, 이주배경청소년이라는 점 때문에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정책과 지원책들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보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주배경청소년들의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고, 이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 역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을 직접적으로 지원할 대안으로 ‘원스톱 지원센터’의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올해가 이 같은 요구를 관철시킬 적기라는 판단이다.
허승연 수원시글로벌청소년드림센터 부센터장은 “이주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종합적인 정보를 안내하고 상담받을 수 있는 곳이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에 각종 공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밖의 체류 자격을 지닌 이들은 그러지 못해 사회적인 보호를 전혀 못 받고 있다”며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나 각 지역사회 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내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이주배경청소년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요즘은 제대로 안내를 해줄 수조차 없다. 개인정보보호 강화로 그들의 번호를 알아내 이쪽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할 수도 없고, 반대로 그들이 우리 연락처를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언제 어디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해서 연결될 수 있는 콜센터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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