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노동자 건강 위협… 작업복 가정세탁 그만”

공장에 세탁소 없어 집에서 빨래
유해물질에 가족 건강 해칠까 염려
“시설 마련해달라” 근로자들 절규

“작업복에 묻은 유해물질을 세척할 수 있는 전문 세탁시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27일 안산 반월시화공단에서 만난 박진호씨(가명)는 어린 두 자녀가 자신이 집으로 가져온 작업복에 묻은 유해물질로 건강을 상할까 전전긍긍한다. 그는 쇳가루, 황산, 분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물질이 가득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다.

박씨는 공장에 작업복을 세탁할 전문 세탁소가 없어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했다.

박씨는 “공기 중에 떠다니다 작업복에 붙는 쇳가루와 분진, 장갑에 스며드는 황산 등 화학물질이 가득한 작업복을 10년 넘는 기간 동안 집에서 세탁했다”면서 “부인, 어린 두 아이의 일상복과 분리해 작업복을 빨고는 있지만, 세탁기를 매개로 유해물질이 부인과 아이에 전달돼 건강을 해칠까 불안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반월시화공단에서 30여년 동안 의자 부품을 만들어온 김성진씨(가명) 역시 금속 가공 작업 중 흩날리는 쇳가루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집에 가져와 빤다. 과거 회사에 세탁소 설치 또는 전문세탁업체 위탁을 요구한 적도 있지만 비용 측면에서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작업복과 따로 세탁하는 그의 일상복에는 종종 세탁기로 들어간 쇳가루와 물이 닿아 만들어진 것으로 의심되는 녹물 자국이 배어 있다.

문제는 오염된 작업복을 가정에서 세탁할 시, 자칫 노동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순천향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가 지난 2017년 발표한 ‘석면노출 설문지 개발 및 국내 악성중피종 환자의 역학적 특성연구’를 보면 석면노출 피해자 411명 중 189명(46%)이 직업과 무관한 경로로 악성중피종을 얻었으며, 이 가운데 17명은 석면 취급 노동자 가족으로 파악됐다.

김성학 금속노조 경기지부 노동안전보건 부장은 “노사가 협의를 통해 세탁업소와 계약을 맺고 정기적으로 세탁업무를 처리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는 달리 영세중소사업장에서는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다”며 “유해물질이 묻은 작업복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작업복 가정 세탁’ 노동자 건강 위협   “노동자 건강권 보장”… 도의회, 공동세탁소 설치 팔 걷어

경기도의회가 작업복에 묻은 유해물질로부터 가족을 지켜달라고 절규하는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각종 유해물질로 오염된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해야 하는 영세중소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경기도가 작업복 공동세탁소를 설치·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조례안에 규정한 것이다.

27일 경기도의회에 따르면 도의회는 이달 열린 제356회 정례회 5차 본회의에서 이은주 경제노동위원장(더불어민주당·화성6)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노동자작업복 세탁소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의결하고 집행부에 의결의안을 이송했다.

해당 조례안은 도내 중소·영세기업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 작업 공동세탁소 설치를 지원해 노동자의 안전과 생활안정을 도모하고자 제정됐다.

제조, 정비, 건설 분야 등 분야에서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의 작업복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잦은 세탁이 필요하지만 그동안 영세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기본권을 보장받기 쉽지 않았다.

이에 이은주 위원장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노동자작업복 세탁소를 설치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실태조사를 추진하는 내용을 조례에 담았다. 도는 세탁소의 수요 및 운영, 성별 현황을 포함한 실태조사에 나설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시·군 및 관련 기업·단체에 자료 제출이나, 의견 진술 등 협조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실태조사 완료 시, 수요예측에 따라 지역별 또는 산업단지별로 공동세탁소가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작업복 세탁소에서는 작업복의 수거, 세탁, 건조, 배송 등 기본적인 세탁시스템은 물론 수선까지 가능하도록 규정, 노동자가 일체의 부가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어 노동자의 편리성도 크게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례안에는 세탁소 관리·운영을 위한 사무를, 설치 목적에 적합한 단체에 전부 또는 일부를 위탁할 수 있다는 내용과 시·군에서 세탁소의 설치·운영 및 시설 확충, 실내환경개선, 세탁소 내 노동자 편의시설 설치 사업을 시행할 경우 필요한 경비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은주 위원장은 “별도의 세탁시설을 보유하지 않은 중소·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일상적 보건안전을 보장하고자 이번 조례를 제정하게 됐다”며 “이번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노동단체, 전문가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간담회 등 추가 논의를 진행해 노동자작업복 세탁소가 빠른 시기에 설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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