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갑작스레 들이닥친 한파…더 시린 취약계층의 하루

갑작스러운 한파로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19일 오전 광명시의 판자촌에서 주민이 따뜻한 물을 사용하기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윤원규기자
갑작스러운 한파로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19일 오전 광명시의 판자촌에서 주민이 따뜻한 물을 사용하기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윤원규기자

평년 가을보다 더운 날씨가 이어지다 갑작스레 한파가 몰아치며 취약계층은 더 춥고 고달픈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11시께 수원역 환승센터. 수원역 건너편 로데오거리에서 지내던 노숙인 무리는 칼바람을 피해 이곳 고가도로 밑으로 모여들었다. 체감온도 1도의 냉기가 고스란히 관통하는 모기장 속에 몸을 뉘인 이들은 박스를 겹겹이 쌓아 만든 조악한 수준의 바람막이로 추위를 견뎠다. 방한용품은 선교단체에서 나눠줬다는 얇은 담요가 전부였다.

자정에 이르러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차가운 빗방울에 잠을 설치던 몇몇 노숙인은 튼튼해 보이는 박스를 골라 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거리 생활 3년차인 황덕규씨(58ㆍ가명)와 역사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 기둥을 비롯해 몸을 기댈 만한 공간마다 자리를 선점한 노숙인 11명이 눈에 띄었다. 대합실 의자 옆에 박스를 펼친 황씨도 팔짱을 낀 채 어렵사리 잠을 청했다.

 

18일 밤 체감온도 1도의 추위 속에 노숙인들이 수원역 환승센터에서 박스로 칼바람을 막은 채 잠을 청하고 있다. 장희준기자
18일 밤 체감온도 1도의 추위 속에 노숙인들이 수원역 환승센터에서 박스로 칼바람을 피해 잠을 청하고 있다. 장희준기자

해가 떠오른 뒤로도 취약계층의 고달픔은 계속됐다.

설안산에서 첫눈이 내린 이날 오전 9시께 광명시 소하동의 한 판자촌. 수백대의 차량이 내달리는 서해안고속도로 아래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엔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스티로폼과 슬레이트를 허술하게 덧댄 지붕에는 여러 개의 돌들이 놓였다. 안식처를 지켜줄 자재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집앞에선 김한성 할아버지(73)와 이해주 할머니(68)가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참이었다. 흔한 보일러조차 없어 따뜻한 물이 필요할 때마다 끓여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 2명이 누우면 가득 찰 법한 좁은 방안에는 닳고 닳은 전기장판 하나와 낡은 옷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구멍이나 빈틈마다 ‘뽁뽁이’가 바람을 막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날이 추워지면 폐지를 어떻게 줍고 다닐지 걱정”이라며 “작년에 지원받고 아껴둔 연탄을 하나씩 피워가며 근근이 버티는 중인데, 올해는 언제 지원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읊조렸다. 할머니가 열어준 연탄창고에는 스무 장 남짓의 연탄만 남은 상태였다.

19일 아침 보일러가 돌지 않는 광명시 소하동의 판자촌에서 한 주민이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장희준기자
19일 아침 보일러가 돌지 않는 광명시 소하동의 판자촌에서 한 주민이 따뜻한 물을 쓰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장희준기자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 취약계층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혈연관계의 문제로 복지 네트워크가 끊긴 경우가 많은 만큼 한파 시기에는 지자체 차원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취약계층이 겨울에도 따뜻하게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늘리는 등 주거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행정안전부 자연재난대응과 관계자는 “통상 11월15일부터 3월15일까지 겨울철 중점관리 대책기간인데, 이번에는 예상치 못하게 한파가 일찍 찾아왔다”며 “선제적인 안전관리를 추진하고, 각 지자체별로 파악 중인 취약계층 네트워크를 토대로 재난도우미가 난방 여부, 건강 상태 등을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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