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옹진군 대청도 미아동 해변의 한 절벽에 핀다는 영롱한 보라색 꽃 한 송이. 그 꽃의 정체가 궁금했다. 1년 중 8월, 그것도 오후 3시에만 잠시 볼 수 있다는 신비의 꽃이기 때문이다.
‘서해 5도’ 중 하나인 인천 옹진군 대청도를 찾아갔다. 꽃이 핀다는 미아동 해변의 한 절벽은 선착장에서 차로 약 10여 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섬 정반대 편이다. 오후 3시가 막 지나자 절벽에 있던 꽃들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조금씩 꽃봉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30여 분이 지나자 꽃봉오리가 우수수 터지며 보라색 꽃잎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인근에 있던 꽃들도 경쟁하듯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신비의 꽃이 선보이는 장관에 저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바로 인천의 깃대종인 ‘대청부채’다.
대청부채의 화려한 자태를 보기란 쉽지 않다. 지난 8월27일 오후 2시경 대청도의 대청부채를 어렵게 찾았지만, 꽃잎을 오므린 채 자태를 숨기고 있었다. 꽃을 피운 대청부채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녀 봐도 헛수고였다. ‘이대로 대청부채의 진면목을 볼 순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든 오후 3시께 약속이라도 한 듯 대청부채는 꽃잎이 부채처럼 옆으로 천천히 펴지면서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홍빛이 도는 보라색의 꽃잎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오묘함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대청부채의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일제히 꽃봉오리를 굳게 닫아버리며 자신을 숨겨 버렸다. 오후 3시에 피어 저녁에 지는 탓에 인천 뭍에서 새벽 배를 타고 4시간이 넘게 걸려 대청도에 들어와도 하룻밤을 지낼 각오를 하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꽃이다.
대청부채는 군락을 이루지 않는 게 특징이다. 해변 절벽 끝이나 주변 수풀 속 어딘가에 그 모습을 숨기고 제 모습을 뽐내듯 흩어져 있어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렵게 만난만큼 감동은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대청부채는 지난 1983년 대청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면서 이름이 주어졌다. 인근 백령도에도 일부 개체가 있지만, 대부분 대청도에 자생한다. 대청부채는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고 개체 수가 적어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한 법정 보호종이다.
그러나 이런 대청부채가 기후변화에 따라 생육지 환경이 변화하면서 개체군이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자생지에서 방목한 가축 등이 먹이로 삼아 위험에 처한 상태다.
특히 아름다운 모습을 집에서 보려고 꽃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점도 이들 서식을 방해하고 있다. 섬 여행 활성화로 관광객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 대청부채의 훼손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근 군부대나 주민, 행정기관 등에서 보호에 나서야 하나, 아직 존재 가치를 모르는 등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
김옥자 대청도 지질해설사는 “대청부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청도를 대표하는 생물”이라며 “너무나 아름다워 한번 보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지만 요즘 개체 수가 줄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이어 “이 때문에 아름다운 대청부채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도 위치를 알려주기조차 겁이 난다”며 “아직 일부 주민에 의해서만 보호되는 실정이고 정부 차원의 보호 대책이 없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 적기다. 앞으로 대청부채를 인천에서 계속해서 볼 수 있으려면 인천시민과 행정기관까지 모두가 나서야 한다.
■ 대청부채, 너흰 누구니…멸종위기 처한 인천의 대표 식물
대청부채는 인천지역에 자생하는 인천을 대표하는 식물종이다. 인천시는 최근 이러한 대청부채의 지속적인 개체 수 감소에 따라 보전 대책을 강구하자는 의미에서 올해 이 대청부채를 인천 깃대종으로 지정했다.
17일 시에 따르면 대청부채는 전체 개체 수가 650여 개에 불과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Red List 위기(EN)등급으로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대청부채는 인천 옹진군 대청도의 미아동 해변, 지두리해변, 모래울해변, 해넘이전망대와 백령도의 두무진포구 등에 분포한다. 대청부채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꽃은 인천 대청도에서 198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청부채는 해마다 7~8월께 꽃이 핀다. 오후 3시에 개화해 오후 9시가 넘으면 꽃이 지는 특징이 있다. 꽃을 오래 감상할 순 없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자태로 유명하다. 키는 약 70㎝ 정도에 꽃잎은 분홍빛이 도는 보라색을 띤다. 잎이 부채처럼 옆으로 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뿌리 발육이 좋지 않아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곳에서 산다. 특히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절벽 바위틈이나 수풀 등에서 군락을 이루지 않은 채 서식한다. 그만큼 직접 서식지를 찾아 관찰하기 어려운 식물이기도 하다.
대청부채는 기후변화 등으로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자생지 내 개체의 지속적인 현황을 파악해야 하는 종이다. 만약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경우에는 서식지 보존을 위해 대청도 등에 서식지를 추가 조성하거나 개체 수 증식 사업이 필요하다. 증식 사업은 자생지 복원 시 중요 기초자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관광객 등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채집을 막도록 대청부채 서식지 안내판을 설치하고 자생지 보호구역을 지정해 관리 체계를 우선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청도, 백령도뿐 아니라 일반인의 접근이 쉬운 지역에 깃대종을 홍보해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등 실질적인 보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는 최근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청부채를 인천 깃대종(보호종)으로 지정, 개체 수 보호에 나선 상태다. 시가 대청부채 보호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만큼 앞으로 이들의 서식지와 개체 수 등에 대한 심층 연구와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시 관계자는 “최근 지정한 깃대종 5종에 대청부채를 포함해 시민에게 알리고 있다”며 “이제는 대청부채에 대한 세부 연구 등을 통해 실질적인 보호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 대청부채의 유래와 개화시간의 비밀
대청부채는 인천에서 211㎞ 떨어진 인천 옹진군 대청도와 229㎞ 거리의 백령도 등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다. 본래 중국에서만 자라는 식물로 여겼지만, 어느새 인천을 대표하는 식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청부채는 우리나라의 대표 식물분류학자인 고(故) 이창복 박사가 1983년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당시 생김새가 범부채와 같다고 해 발견장소인 ‘대청’의 이름을 따 ‘대청부채’란 이름이 탄생했다. 본래 중국산 식물이나, 1920년 만주 접경인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채집한 기록이 남아있다.
아직 대청부채가 어떻게 대청도로 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연구자료는 없다. 다만 벽동이란 곳은 여진족이 점령했던 곳이어서 중국으로부터 넘어왔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또 원나라 마지막 임금인 순제가 유배를 올 때 가지고 왔으리라 추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청부채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바로 오후 3시에 꽃을 피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청부채는 ‘생물 시계’로도 불린다. 대청부채가 이 시간에 꽃을 피우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숨겨져 있다.
중국의 식물학자들은 최근 ‘린네 학회 생물학 저널’을 통해 대청부채가 유전적으로 가까운 범부채와 교잡종이 발생하는 걸 막고자 개화 시간을 조절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대청부채와 범부채는 염색체 수가 같아 인공적으로 교배하면 교잡종이 생길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범부채가 오전에 꽃을 피우고, 대청부채는 오후에 꽃을 피워 이를 막는다. 또 오후 4시~오후 7시 이들 꽃이 모두 꽃을 피운 시간에는 식물들이 꽃가루 공급량을 조절해 벌들을 맞이하는 시간을 달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꿀벌들은 범부채를 오전 7시~오전 11시에, 대청부채를 오후 4시~오후 7시에 집중적으로 방문해 교잡을 막는다.
■ 김옥자 대청도 지질해설사, 대청도의 아름다움 대청부채로 알려
“대청부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아예 대청도로 터전을 옮겼답니다.”
김옥자 대청도 지질해설사는 2017년부터 4년 넘게 대청도 1기 지질해설사로서 지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김 해설사는 대청도를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여긴다. 대청도는 물때가 되면 풀등이 압도적인 비경을 뽐내고, 그 주변으로 대청도를 대표하는 대청부채와 아름다운 해변, 또 그 사이 우뚝 솟은 암석이 신비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김 해설사는 “이곳에서 태어나 육지로 나갔다가 20여 년 전 건강이 안 좋아져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며 “그때 눈에 들어온 대청도의 자연경관에 다시 한번 매료돼 아예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대청부채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등공신이다. 어디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암석이나 수풀 중간중간에 띄엄띄엄 자라고 있는 대청부채의 매력에 단번에 사로잡혔다.
김 해설사는 “7~8월경 오후 3시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대청부채는 꽃봉오리를 피우고 밤이 되면 스스로 꽃봉오리를 닫는다”며 “그 순간 대청부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꽃이 말을 거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인지 대청부채는 더욱 마음이 가고 오래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고 했다.
대청부채를 더욱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대청면사무소 옆 화단에 대청부채를 직접 심기도 했다. 이제는 꽃들이 자리를 잡아 50여 개체의 대청부채가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김 해설사는 “대청부채에 너무 많은 애착이 가서 면사무소에 요청해 화단을 만들고 가꾸고 있다”며 “이를 통해 대청부채를 가까이서 보는 동시에 자연 속에서 훼손되는 대청부채를 보호하자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우리 대청도의 소중한 자연을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활동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민우ㆍ김민ㆍ이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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