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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불안의 시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오피니언 삶과 종교

[삶과 종교] 불안의 시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잘하는 나라로 꼽히는 대한민국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안한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 국가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희생된 분들에게 국가적 관심이 높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출산율은 거의 세계 최저 수준이기에 학교들이 점차 문을 닫고 있다. 그뿐인가? 1998년 외환 위기부터 우리나라는 구조 조정의 시대, 대량 해고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해법이 항상 해고였다. 그리고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가 큰 나라가 우리나라다. 항상 노심초사해야 하는 사회, 일명 ‘불안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자. 천주교에서는 20~30대를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이 불안한 세상에서 기성세대들 중심 사목에 집중한 천주교회는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려 생존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없고 교회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이상주의로 인해 지치고 힘든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문제의 화살을 돌리곤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천주교를 기쁨과 매력을 주지 못하는 교회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천주교의 성직자 중심 사목으로 인해 교회 구성원들은 더 이상 대화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환경에 살아간다. 아마 20년만 지나도 천주교에 봉사할 신자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불안의 시대,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 모든 사람이 기본권을 누리고, 아플 때 돈 걱정 안 하고 병원에 갈 수 있고 배고플 염려하지 않고 어느 수준까지 교육받을 수 있는 국가적 정책을 위해 가톨릭은 물론 종교 단체들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돈 있는 사람들한테 거둬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는 것을 복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북유럽식 복지는 사회보험을 공동구매하는 방식이다. 의료보험, 교육보험, 연금보험 등을 국민 모두 공동 구매한다면 가격을 낮추는 효과로 국민 전체가 큰 혜택을 보는 시스템이다. 즉 우리 모두에게 정책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종교가 할 수 있는 큰 능력 중 하나는 ‘위로(consolatio)’가 아닌가 생각한다. 라틴어로 ‘함께’라는 의미의 ‘con’과 ‘달램’이라는 ‘solatio’의 합성어다. 즉 함께 달래주고 안심시키는 일이 위로하는 일이다. 사실 천주교에서 젊은이들은 많지 않지만, 독특하게 누군가 돌아가시면 신자들이 장례식장에 벌떼처럼 찾아와 기도하는 문화가 있다.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신자들은 처음 보는 망자와 유가족을 위로한다. 망연자실한 유가족들에게 특히 지인이 많지 않은 유가족들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불안의 시대, 우리 모두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삶이 필요하다.

김의태 수원가톨릭대학교 교회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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