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대륙·해양세력은 낡은 개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라는 개념은 매우 오래된 얘기다. 역사적으로 대륙을 무대로 삶을 영위하던 세력과 해양을 무대로 삶을 영위하던 세력은 각자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 능력을 발전시켰고 전쟁의 방식에도 큰 차이가 났다. 이를테면 대륙의 몽골 유목민들은 말을 타고 유럽을 침략했으며, 유럽의 제국은 배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을 정복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지정학자 맥킨더(H. Mackinder)는 유럽과 아시아를 합친 ‘유라시아’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안했다. 유라시아 중심부를 지배하는 자가 전 세계를 지배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육상민족’과 ‘해양민족’이라는 용어를 상호 적대적인 지정학적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는 대륙에 철도망이 놓이면 해양시대의 몰락과 함께 유라시아가 세계 권력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기술 발전에 따른 이동수단 변화가 있다.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의 이동수단이 몽골의 ‘말’로부터 유럽의 ‘배’로 바뀌었고 미래에는 ‘철도’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과거 지정학에서 중시했던 ‘철도’를 능가하는 기술 발전이 이뤄짐에 따라 전 세계의 패권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구분하는 것은 이미 낡은 개념이 됐는지도 모른다. 중국·러시아와 같은 대륙세력도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가지고 전 세계 해양으로 진출할 수 있으며, 미국과 같은 해양세력은 인공위성과 드론을 통해 대륙의 구석구석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거대 세력 간의 대립구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라는 과거 지정학의 개념이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된다. 지리적으로 ‘반도’인 한반도는 북쪽으로 대륙과 접하고 남쪽으로 해양과 접한다. 대륙의 초강대국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북쪽에서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해양의 초강대국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남쪽에서 접근할 수 있다. 미·소 냉전시절부터 이어져 온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는 미·중 전략경쟁 시대를 맞아 심지어 더욱더 강화될 조짐까지 보인다. 맥킨더는 한반도가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 지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 오래전의 예측이 지금까지 한반도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7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분단도 결국 지정학적 충돌로부터 시작됐다. 역사적 유물과 같은 과거 지정학의 개념이 여전히 작용하는 한반도, 비록 지정학적 충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라는 용어를 편의상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대륙과 해양이라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부터 탈피해 남북을 서로 갈라놓으려는 지정학적 원심력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민경태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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