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열섬 한복판에 들어선 듯 푹푹 찐다. 피부를 굽는 듯한 뙤약볕에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숨이 턱턱 막혀 외출이 두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 같은 휴가를 맞아 '집콕'과 '방콕'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은 바다로 계곡으로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곳을 찾아 여행을 나선다. 위험을 무릅쓰고 바캉스를 떠나는 대신 안전하고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좋은 피서지가 없을까. 이런 고민했다면 주목해도 좋다. 불쾌지수 낮추고 온종일 책을 읽으면서 감성지수를 높여주는 ‘북캉스’를 소개한다.
■기존 도서관 틀을 벗은 '힙'한 공간 의정부 미술도서관
북캉스를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의정부시에 있다. 그동안 의정부 하면 ‘부대찌개’만 떠올랐는데, 지난 3일 방문했을 때만큼은 “의정부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어?”라는 질문을 연거푸 했다.
으뜸은 민락동에 있는 미술도서관이다. “도서관이 왜 이렇게 예뻐?”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탄성부터 터져 나왔다. ‘도서관을 품은 미술관,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이란 슬로건답게 인테리어가 아주 색다르다. 독서를 하는 공간이라는 기존 도서관의 틀을 벗어나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뤄졌다. 총면적은 6천565㎡, 3층까지 있는 큰 규모에 눈이 절로 휘둥그레진다.
1층은 미술 전문 영역인 아트그라운드 전시실로 구성됐다.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폭넓게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신사실파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도록 등의 미술자료가 비치됐다. 시즌마다 새로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도 있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중앙에 회오리 모양으로 놓인 테이블이다. 이곳이 바로 SNS에 올라오는 포토존이다. 기자도 놓치지 않고 찍어봤다. 은은한 조명 아래 어떻게 찍어도 예쁘게 나와 ‘인생샷’ 명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 테이블 안쪽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꽃 한 송이도 보여요.” 도서관 관계자가 설명해주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칠 또 다른 재미의 인테리어 포인트가 있었다. 관계자 말대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위를 올려다보니 높다란 천장까지 연결된 원기둥 형태의 계단과 조명들이 꽃 한 송이를 만들어낸다. 계단은 줄기를, 양옆 천장 따라 길게 퍼지는 구조물은 나뭇잎을, 책 모양 여러 개의 조명은 꽃잎처럼 보인다. 인테리어 하나하나 섬세함이 느껴진다.
■책만 읽기 아까운 트렌디한 복합문화공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층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회오리 모양 테이블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치듯 나열되어 있는 책장들이 마치 책 한 권이 펼쳐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도서관 하면 지루하고 획일화된 책장 배치가 떠오르지만, 이곳은 작은 것 하나에도 호기심이 들도록 디자인됐다.
2층 제너럴그라운드는 문학, 철학 등 일반도서 코너와 어린이 도서가 있다. 우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이 눈길을 끈다. 책을 읽는 공간이 놀이방처럼 재미있고, 편하게 되어 있어 아이들 독서습관 들이기에도 좋을 듯하다. 지금은 코로나로 중단되었지만 한켠에 공연장처럼 설치해놓은 스테이지에서는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었다고 한다.
일반 자료가 있는 곳에는 잡지, 큐레이션 코너가 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여행’을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주제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소품을 꾸며두어 센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관련 서적에 한 번 더 눈이 갔다. 관련 주제는 매번 바뀌며 도서관 사서들을 통해 추천된 책이 진열된다. 넓고 쾌적한 공간 곳곳에는 테이블과 폭신한 의자가 놓여있어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
3층 멀티그라운드는 예비 작가를 위한 창작공간인 오픈 스튜디오와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다목적홀이 있다. 아울러 기증 문화를 유도하는 기증존도 마련돼 있다.
기증존에는 선승혜 대전시립 미술관장을 비롯해 와이 호놀룰루 미술관에서 기증한 책들을 볼 수 있다. 또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기부한 미술 서적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정말이지 책만큼 무언가를 쉽고, 깊게 알아갈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지금도 책으로 많은 화가 분들과 이야기하고, 가끔은 꼭 제 옆에 살아계시다는 느낌도 받는답니다. 부디 기쁘게 보시고 저처럼 많은 위로와 영감을 얻었으면 해요. 그림은 어렵지 않아요 바로 저희 곁에 있습니다!”
김남준이 기증하며 남긴 위 메시지처럼 무더위가 좀체 가실 미기를 보이지 않는 올 여름엔 미술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위로와 영감을 받는 슬기로운 휴가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블랙뮤직' 특화한 음악도서관
미술도서관에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신곡동에도 ‘북캉스’하기 좋은 곳이 있다. 바로 ‘음악도서관’. 개관한지 두 달 밖에 안돼서 아는 사람만 아는 ‘힙’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예상대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 직원이 들어오는 손님들을 향해 ‘블랙뮤직(블루스·재즈·힙합·R&B) 특화 도서관’이라고 설명한다. 필 충만한 흑인 음악을 맘껏 접할 수 있다는 뜻. 들뜬 마음으로 둘러보니 내부 분위기는 특별할게 없어 보인다. 규모도 미술도서관에 비해 크진 않다. 대신 알차고 즐길 거리가 많으니 실망은 금물!
1층은 오른쪽 북스테이지, 왼쪽 오픈 스테이지로 나눠져 있다. 앞서 미술도서관에서 보고 온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생각한다면 여긴 살짝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먼저 북스테이지에는 팝, 재즈, 클래식 등의 음악도서와 문학, 사회 같은 일반도서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또 음악 매거진 코너가 있어 평소 음악과 관련한 전문지식을 쌓고 싶었던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오픈 스테이지는 평소에는 책을 읽는 공간으로 활용되다가 연주회가 있는 날 소규모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피아노가 배치되어 있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객석이 계단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조용해야 할 보통의 도서관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음악 도서관이기에 가능하다.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는 벽면에 가득 채워진 다채로운 그라피티도 볼 수 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지 많은 사람들이 그라피티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드는 모습이 보인다. 2층은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악보와 시 컬렉션, 매거진이 비치되어 있으며, 커뮤니티 룸도 있다. 커다란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책을 읽으면 무더위 스트레스는 절로 날라갈 듯하다.
■CD·LP·DVD와 함께 추억속으로
3층은 뮤직 스테이지다. 6천장이 넘는 CD와, 약 1천장의 LP, 800장이 넘는 DVD가 빼곡하게 있다. 그 중 오디오룸안에 있는 LP 판과 턴테이블 장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자도 듣고 싶은 LP 판 하나를 골라 턴테이블에 돌려봤다.
둥그런 LP 판위에 바늘이 떨어짐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묵직한 선율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음질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거슬러 온 것 같다.
더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CD도 매력적이다. 플레이어 기기에 CD를 넣고 버튼을 누르자 CD가 힘차게 돌아간다. 돌아가며 내는 ‘위잉’ 소리가 사소하지만 색다른 재미를 준다. 어릴 적 카세트테이프와 CD를 들었던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 설레는 시간이 될 터.
이외에도 3층에는 DVD를 감상할 수 있는 뮤직홀과 스튜디오 룸이 있다. 스튜디오 룸은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해 직접 작곡, 연주해 볼 수 있는 공간과 피아노를 자유롭게 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음악 체험을 할 수 있는 이곳은 이색적인 재미가 넘친다. 책과 음악 속을 유영하며 사색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그야말로 ‘눈과 귀가 호강’ 하는 북캉스가 될 것이다.
글·사진=황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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