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추리소설 주인공인 괴도신사 ‘아르센 루팡’은 등장 자체로 큰 충격이었다.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를 비롯한 기존의 추리소설들은 정체불명의 범인을 상대로 미궁과도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사소한 단서를 토대로 범인을 추적하기까지의 과정과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독자들이 느끼는 전율은 추리소설만이 줄 수 있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루팡은 달랐다. 루팡의 정체는 만천하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루팡은 기상천외한 절도행각을 벌이고는 탁월한 변장술과 트릭으로 유유히 범죄현장을 빠져나간다. 누가 범인인지 알지만,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역사상 최고의 도둑이 탄생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루팡이 ‘월급’과 결합해 ‘월급루팡’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월급루팡은 제대로 일은 안 하면서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일상에서는 주로 하는 것 없이 바쁜척하거나, 동료에게 일을 미루는 얄미운 사람을 뜻하지만, 최근 전 국민의 분노를 유발하는 월급루팡이 나타났다. 지난 4월 이스타항공의 500억대 회사자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주인공이다. 이 의원은 지금 2달째 구치소에 수감중이지만, 수감기간에 매월 기본수당과 입법활동비로 1천만원 상당의 세비를 꼬박꼬박 받고 있다. 국회나 지역구가 아닌 구치소에 있음에도, 매월 세비를 지급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아무리 중한 범죄로 구속돼도, 세비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하기 전에는 이런 불합리는 계속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수차례 같은 문제가 반복됐음에도 관련 입법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무노동·무임금 원칙이나 공직자의 청렴의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눈앞에 있는 ‘월급루팡’조차 방치하는 작금의 국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 혹시 알량한 동업자정신이 발휘된 것인지, 아니면 이 역시도 국회의 특권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물론 루팡은 귀족이나 자본가의 저택을 대상으로 절도행각을 벌였지만, 국회는 국민의 혈세로 피의자·피고인의 곳간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감히 비교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회엔 월급루팡이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 역시 국회가 가지고 있다. 셜록홈즈같은 유능한 명탐정이 될지,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루팡 속 무능한 경찰이 될지….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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