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사단과 Naeronambul

6월의 중순 신록이 우거진 앞산을 바라보면서 아침의 창문을 연다. 갑자기 산 전체에 가득한 밤꽃향이 코끝으로 밀려든다. 나도 모르게 그만 창문을 닫다가 맹자(孟子)의 ‘사단설(四端說)’이 떠올랐다. 사단(四端)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4가지 품성이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을 중시한다.

최근 나라 안팎으로 산 전체로 무성하게 번지는 밤꽃향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너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쓴 ‘조국의 시간: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지난달 출간하자마자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저자는 “보통 사람 같으면 쪽팔려서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음에도 여전히 정의의 화신인 척하고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가히 “세계 최고의 멘탈왕”이라 할만하다. ‘내로남불’의 극치며 실로 ‘조국스럽다’.

일본은 137만여t의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추진하고 있다. 오염수에는 수소탄에 쓰이는 삼중수소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 독일 킬 대학 헬름홀츠 연구소가 방사성 물질 세슘-137의 이동경로를 예측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방사능 오염수가 방류될 경우 200일 만에 제주도 해역에 도달하고, 340일이면 동해 전체를 뒤덮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우리가 즐겨 먹는 해산물에 삼중수소가 포함돼 내 몸의 세포핵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원전 오염수의 해양방류에 대해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며 “해양방류는 전 세계 원전에서 비상시가 아닌 때에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게다가 일본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해 우리 정부가 시정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수정 불가 입장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평창올림픽 때 IOC의 권고에 따라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삭제했다. 실로 ‘내로남불’의 극치다.

조국의 무리와 일본처럼 부끄러움과 옳고 그름을 무시하는 세력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맹자의 ‘사단(四端)’에 ‘naeronambul(내로남불)’을 추가해야 이 현상이 설명될 것 같다. 부끄럽게도 적합한 영어 단어가 없어서 ‘naeronambul’이 김치, 온돌, 재벌에 이어 곧 웹스터 영어사전에 등재된다고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의 시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아침이다.

김기호 둘하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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