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어린이 시절에 몸이 약해 잔병치레를 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 손에 끌려 자주 다녔던 병원이 집에서 가까운 중구 경동의 자선소아과였다. 그때 원장님은 좋은 대학을 나와 외국 유학까지 한, 젊고 아주 실력이 좋은 의사라고 지역에 이름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 몸이 건강해지고, 중구를 벗어나 다른 동네로 이사까지 해서 이 병원을 찾을 일이 없이 수십 년을 보냈다. 다만 가끔 신포시장 주변에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그 병원 앞을 지나며 옛일을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수년 전 어느 날 오랜만에 신포동에 나갔다가 이 병원이 건물째 없어지고 그 자리에 주차장이 들어선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골목을 잘못 찾았나 했다. 사실을 알고 나서는 엄청 큰 추억 하나가 가슴 속에서 쑥 빠져 사라진 듯한 허탈함이 찾아왔다. 그 시절 자선소아과를 다녔던 시민이 적지 않을 테니 이런 감정을 느낀 이가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인천시가 4건의 ‘등록문화재’ 후보를 선정했다.
자유공원에 있는 100살이 훨씬 넘은 플라타너스 나무, 송학동의 옛 시장관사, 옛 수인선 협궤(狹軌) 증기기관차와 협궤 객차이다. 2019년 「시·도 등록문화재 제도」가 생긴 뒤 인천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등록문화재는 국보·보물·사적·천연기념물·중요민속자료 같은 ‘지정문화재’에는 못 미치지만 그 보존가치가 인정되는 건축물이나 문화예술작품·역사유적 등의 근대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마구잡이 개발 사업이나 무관심에 떠밀려 속절없이 사라지는 일을 막기 위해 지정·관리토록 한 것이다.
자선소아과가 인천 최초의 전문 소아과였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건물이 남아있었다면 그 대상이 될 만했을 것 같다. 이미 헐려 없어진 조일양조장이나 신일철공소, 비누공장 애경사 건물은 더욱 그렇다. 요즘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이나 미쓰비시 줄사택이 그런 것처럼 “철거냐 보존이냐” 하는 논란은 앞으로도 곳곳에서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근·현대 문화유산의 보존 가치에 대한 평가는 보는 눈에 따라 얼마든 다를 수가 있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찌 보면 아주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조금이라도 보존 논란이 생긴 것이라면 없애기 전에 한번은 더 신중하게 시민들의 뜻을 물어보는 절차를 거쳤으면 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문화도시, 문화시민다운 자세일 것이다.
무엇보다, 없애는 것은 언제든 없앨 수 있지만 일단 없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살려내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니까….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