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이순신 사면을 상소한 정탁

충무공 이순신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97년 2월, 27일간이나 옥에 갇혀 선조 임금으로부터 혹독한 국문(鞫問)을 받는다. 선조는 충무공에 대해 불타는 질투와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고 충무공에 쓰인 죄명도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임금을 업신여기고 역모를 꾀했다는 것. 제일 무거운 죄다.

특히 임금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백성으로부터 신망을 받는 충무공을 이참에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 선조의 속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국문에 시달리며 초주검이 된 충무공은 점점 말을 잃고 흐느끼기만 했다. 선조는 ‘왕을 속인 자는 구족(九族)을 멸(滅)하겠다. 또한 이순신의 구명을 논하는 자는 같은 무리로 처단하겠다’며 대신들이나 유림에서 있을지 모를 사면운동을 단호히 차단했다.

그러나 이 위급한 운명에 처한 이순신을 살리고자 자기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인물이 나타났다.

정탁(鄭琢). 그는 왜란이 발생하자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갈 때 호종관으로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그래서 선조가 각별히 신임했고 이로 하여 좌찬성, 좌의정, 판부사 등 두루 요직을 거쳤는데도 선조가 이순신을 죽이려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정탁은 선조의 비위를 거슬러 화를 입을 수도 있지만 이순신을 사면해야 할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진술해 마침내 선조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그 해 4월1일 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을 하게 됐고 쑥대밭이 된 우리 수군을 다시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됐다. 만약 정탁 같은 충신의 구명 상소가 없었으면 이순신은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임진왜란은 어떻게 됐을까? 사실 정탁은 이순신을 구했지만 결국 그것은 나라를 구하고 임금도 구한 참 신하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사면은 선심이 아니라 정치다.

전 세계에서 두 사람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갇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지만 심각한 것은 지금 국제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뜨거운데 우리 반도체 최일선에 있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들에 대한 사면에 대한 논쟁이 시끄럽더니 요즘은 잠잠하다. 물론 여권 인사가 사면을 이야기하면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처럼 강성 친문의 문자 폭탄에 상처를 입고 사면권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민 공감대’라는 카드로 상황전개를 차단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해 보자. 그는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음에도 대통령이 되자 전두환을 사면하도록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해 관철했다. ‘국민 공감대’를 따지자면 그때의 상황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사면을 실현했다.

지도자는 국민 공감대를 따라 가야 하지만 때로는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 가기도 해야 한다. 특히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경제 5단체, 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주지들과 종교단체, 대한 노인회 등이 사면 탄원서를 냈으니 국민 공감대의 틀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사면(赦免)은 선심(善心)이 아니라 정치(政治)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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