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2차 가해 만연한 軍, 성역은 없다

특수부대 예비역들이 팀을 이뤄 결전을 벌이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실전 훈련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대결은 인간이 군생활을 통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예비역들이 각 부대의 명예를 걸고 진지한 진검승부를 벌이지만 그 안에는 대본도 없고, 특수효과도 없다. 오직 땀과 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감동인 거다. 어쩌면, 이 감동의 이면에는 20대 청춘을 온전히 군(軍)에 바친 그들의 숭고한 선택에 대한 리스펙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비역 신분임에도 아직까지 대한민국과 군에 대한 충성심을 오롯이 간직한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사건들이 군대를 사회적 공분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 공군 부사관의 안타까운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국방부 시계가 거꾸로 도는 것이 아닌 아예 군부독재 시절의 그것에 멈춰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된다.

군대 내 성추행 사실만으로도 심각한 범죄지만, 더 큰 문제는 그에 대한 군(軍)의 대처였다. 해당 부사관은 회식자리에서 선임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자 다음날 이를 신고했다. 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그 사이 주위 상관들은 피해자 보호 매뉴얼에 따르는 대신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느냐”라며 회유를 시도했고, 가해자는 “용서해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자해 협박’을 하는 등 마치 맡겨놓은 물건 찾아가듯이 떳떳하게 합의를 강요하기도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군대용어로 ‘피아식별’이 되지 않는 아사리판이 돼버린 것이다. 이후 회식을 함께한 상급자가 가해자를 선처해달라며 탄원서를 제출하며 주변 상황이 가해자 중심으로 흘러갔고, 이를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쫓겨나듯 다른 부대로 옮기게 됐다.

결국 해당 부사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하루 동안 20만이 넘는 국민이 동의하자, 갑자기 국방부가 직접 나서 철저한 수사를 약속하고, 해당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속전속결로 청구되는 ‘불쾌한 마법’이 일어났다. 부디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가해자에 대해 엄벌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상명하복의 폐쇄적인 전근대적인 군대문화 뒤편에 숨어,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던 2차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 군이 현역 부사관을 죽음으로 내모는 순간에도, TV 속 예비역들은 소속 부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씁쓸한 현실, 부디 국방부에 걸린 시계를 아예 새로 교체하길 권한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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