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한 장병이 SNS에 한 장의 도시락 사진을 올렸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밥과 반찬이라고는 몇 조각의 김치와 장아찌, 두스푼 정도의 닭볶음이 담긴 충격적인 비주얼은 흡사 1950년대 보릿고개 시절을 연상케 했다. 혹시 다이어트 식단인가 싶었지만, 놀랍게도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장병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의무 격리되는 동안 제공받은 실제 도시락이라고 한다.
하지만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부대 장병들이 올린 SNS 속 사진과 경험담은 이게 과연 ‘실화’인가 싶을 만큼 더욱 처참했다. 밥에다 김과 햄이 전부인 도시락부터 장병 120명이 햄버거빵 60개를 일일이 쪼개 나눠먹었다는 글까지, 명색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서 20대 국군장병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며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격리 장병을 폐가 수준의 시설에 머물게 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더러운 이동식 간이화장실을 이용토록 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과연 이게 군복무인지 포로생활인지 헷갈릴 지경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육군훈련소에서는 입소 후 3일간 양치와 샤워를 금지하고, 취침 시간에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인권침해 행위를 마치 방역지침처럼 운영했다니 더욱 충격적이었다.
뒤늦게 국방부가 지휘관 책임 하에 격리 장병에 대한 급식 여건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며 긴급점검에 나섰지만, 이미 친절하게 점검일자까지 예고해준 탓에,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사단장 오시는 날’의 재림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육군훈련소가 지난 3일부터 기존의 과잉방역 조치를 철폐하기로 했다니, 늦었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격리 시설에 대해 용변과 샤워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하니 이 부분은 지켜볼 일이다.
결국 SNS 속 도시락 사진이 불러온 나비효과로 국방부장관의 사과와 함께 후속 개선책까지 불러왔지만, 이번 논란이 남긴 뒷맛은 쓰다. 작금의 징병제 하에서 군복무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20대 청춘을 오롯이 국가에 헌신하는 청년들에게 제대로 대우해주기는커녕 SNS를 통해 대중 앞에 하소연하도록 만들었다는 현실이 씁쓸한 것이다.
이제 군도 변해야 한다. 과거 폭력이 일상화된 군대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소원수리함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부모 세대의 장병들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부당한 처우에 대해 적극 항변하고 SNS로 공론화시킬 수 있는 ‘인권감수성’을 갖춘 신세대 장병의 시대가 온 것이다. 혹시 국방부의 시간은 아직 과거에 있는지, 그렇다면 당장 ‘2021년 5월6일’ 현재로 맞출 것을 권한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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